"예수님의 인간 사랑이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것"

 

펫팸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Pet + Family의 합성어로 동물을 가족의 개념으로 인식하며 지내는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관련 용어로 딩펫족, 혼펫족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호칭이 바뀐 점에 교훈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펫을 돌보고 키우는 사람에게 ‘사랑’이 많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15가지 특징으로 사랑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새계명으로 사랑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기준에서 본다면  Pet에 대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불쾌하시다고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펫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요. 펫을 돌보는 것은 자기애의 표현이거나 집착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거기에 희생과 헌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도권이 전적으로 주인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펫은 주인에게 자아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주는 사랑에 반응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수동적일 뿐입니다.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주인의 통제권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반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면 절대적인 충성과 애교로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요. 주인은 이에 만족하고, 정확히는 펫으로부터 받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그런 돌봄의 과정을 통해 외로움과 삭막함을 견뎌냅니다.

사람도 어린 시절에는 펫과 비슷합니다. 사고를 치거나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절대 의존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항상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성장하면 자의식이 발달하고 자아가 견고히 형성됩니다. 부모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대립각을 세우거나 물리적 갈등을 유발합니다. 부모는 당황하다가 실망하다가 경악하게 되고 사랑은 위기를 맞습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은 어떤가요? 첫 눈에 반해서 뭐든지 좋을 때에는 눈이라도 빼어줄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든 시기를 만나고 사랑의 한계에 이릅니다. 사회관계 속에서 업무상 혹은 필요상 만나야 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이렇듯 사람을 사랑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입장을 상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자세(I’m OK, You are not OK)로는  주종 관계가 생길지 몰라도 인격적 관계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I’m not OK, You are OK)가 되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사람과의 사랑 관계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절대 원리(logos, 말씀)가 사람들의 세계, 변덕스럽고 유한하며 상대적인 인간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기를 비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 2장). 그 이유를 ‘사랑’때문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요 3:16).

하지만 인간은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회피했고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그 사랑을 찔렀습니다.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고독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사랑하기로 정했던 대상은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쏟는 사랑이 때로 바보스럽고 비효율적인데도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 이방인이 하는 사랑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랑은 펫에게 베푸는 사랑과 달라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의 인간 사랑이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표현이 있나 봅니다.

우리의 사랑은 늘 부족합니다. 그것은 우리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문제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랑은 결코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펫을 사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사랑의 질서’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하나님을, 다음에는 인간, 그 다음에는 자연과 동물과 물질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사랑을 다시 배우는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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