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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과거와 미래를 단절하고 오늘 주님만 바라보며 끈기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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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0  05: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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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1-2).

아브라함은 일생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두 차례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한 번은 하란 땅에서였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두 번째는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때였다.

하란에서의 ‘가라’와 모리아 사건의 ‘가라’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첫걸음을 떼지 않고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서로 다르다. 고향(본토)과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가라’는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창세기 22:1-2의 ‘가라’는 미래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독자 이삭은 아브라함의 미래였다.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었다. 이 미래의 출발점인 독자를 죽이라는 것은 미래와 단절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에게 ‘가라’고 명하셨다. 첫 번째 명령은 아브라함이 과거와 단절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첫걸음을 떼도록 한 것이고, 두 번째 명령은 인간적인 기대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단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위대한 일은 힘이 아니라 인내로써 이룩된다. 믿음의 단련이란 한 걸음, 한 걸음 인내하면서 이루어가는 고된 과정이다. 첫 번째 ‘가라’와 두 번째 ‘가라’ 사이에는 수많은 인내의 걸음들이 놓여 있다.

아브라함이 겪은 모리아 산의 시험은 이전의 모든 시험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정상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안배로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르면서 믿음이 성장해 마침내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없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1-12).

어미 독수리는 때가 되면 새끼 독수리들을 둥지 밖 절벽 밑으로 떨어뜨린다. 날개를 사용해 본 적 없는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날개를 펄럭이지만 하늘로 솟아오르지 못한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새끼들을 낚아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새끼들이 나는 법을 체득한다.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둥지를 떠나 창공을 선회하는 독수리가 된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독수리 이외의 새들은 절대로 이 같은 방식으로 새끼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끼들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밑으로 내려가 새끼를 낚아챌 수 있는 새는 독수리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신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셨다. 독수리가 새끼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르치셨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단계를 어린아이의 신앙과 장성한 사람의 신앙 두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찌니라”(히 5:13-6:2).

하지만 믿음의 단계를 두 단계로 나눌 수 없다. 이유기가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시작해 중간 과정을 거쳐야 신앙의 절정인 모리아 산 정상에 서게 된다. 그러기 위해 인내와 끈기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가라’는 명령을 내리신 그분이 믿음의 여정을 주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창세기 22:2의 ‘독자’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로 인정하신다. 이스마엘이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언제나 독자라고 부른다(2, 12, 16).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몸종 하갈의 몸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아들로 간주하시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이다(15:4).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분의 방법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성취될 것을 믿고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여정은 과거와 미래를 단절하고 오직 현재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끈기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도중에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겪게도 되지만 우리의 목표는 모리아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거장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2-16).

사도 바울은 이러한 태도로 그에게 닥친 모든 역경을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바꾸었다. 생명을 건 수 차례의 전도 여행을 마친 후 그는 영광의 자리에 서는 대신에 로마의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었지만, 로마 감옥은 사도 바울에게 믿음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곳에서 쓴 편지는 성경의 책이 되었다. 어떤 신학자는 로마 감옥을 ‘복음의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그의 자세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었고, “나를 본받으라”는 그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토가 되었다. 인내가 이 모든 일들을 가능케 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야고보서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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