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 1

수태고지 - Matthias Stomer

이번에는 성령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공부하는 이유는 성령론이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소외된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령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경계의 눈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태도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신앙인들은 종종 역사 속에서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성령체험이 없는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성령체험을 성경보다 높은 권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체험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분파주의자가 되어 교회를 분열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는 영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성령운동을 하면서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운동을 하는 한 목사는 전세계로 성령집회를 다니면서 여행지에서 초호화생활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직통계시를 강조하며, 잘못된 종말론의 이단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때문에 교회는 성령운동을 하는 신앙인들을 경계하고 억압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운동을 경계한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억눌린 성령체험은 오히려 음지에서 혹은 지나치거나 건강하지 못한 형태로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 교회는 다시 성령운동을 경계하고 억압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지나치게 성령운동을 경계하는 입장을 지양하면서, 동시에 건강한 성령론을 신앙인들에게 교육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론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성령, 인격적인 하나님

이번 성령론 공부에서는 자세한 신학적 논의를 하느라 힘을 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데 집중하고, 그래서 우리가 변화되는 데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성령이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마치 성령이 성부 하나님에게 종속된 존재, 혹은 예수님에게 종속된 존재로 생각합니다.

성령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성령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존재, 혹은 하나님의 힘이나 능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을 영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생각하면, 성령이 인격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에게 종속된 어떤 힘에 불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인격적인 분이라는 의미는 사귐과 교제를 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님, 이제 가십시다.” 설교하러 단에 올라갈 때에도, 운전할 때에도, 중요한 일을 할 때에도 입버릇처럼 “성령님, 이제 가십시다.”라고 말합니다. 이분은 성령과 깊은 사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 생각할 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한 문장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성령에 대한 논의는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분이 나와 교제를 맺을 수 있는 인격적인 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성령론 공부를 통해서 성령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고, 나와 깊은 사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격적인 분임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만나야 할 하나님

중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만나야 할 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에 대해 알려 주는 가장 충격적인 말씀은 요엘 2:28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어린 자녀와 젊은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아주 특별한 말씀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이 처음 들어본 메시지입니다. 그동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나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엘서의 말씀은 다릅니다. 요엘은 “하나님의 영이 만민에게 부어질 것”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임하십니다. 신앙인은 이것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삶에 임하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렁이의 기도』라는 책에서 김요한 목사는 성령을 처음 체험했던 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김 목사의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고 6개월이 되었을 때,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정기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에게 아기의 성별을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에게 넌지시 “아이 신발을 분홍색으로 준비할까요, 파란색으로 준비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요?” 기분이 나빠진 김 목사는 속으로 화를 내었습니다. ‘아니, 지가 의사면 의사지, 파란색 혹은 분홍색, 그거 하나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김 목사는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고, 면박을 당한 게 분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기도하는데 느닷없이 성령께서 찾아오십니다. 김 목사는 서재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는데, 무릎을 꿇자마자 어떤 뜨거운 불이 온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맑고 분명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이다, 됐냐? 뭐, 그런 것 가지고 하루 종일 화를 내고 그러느냐?” 김 목사가 처음 들은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성령의 첫 체험이 폼나면 더 좋았을텐데, 처음 들은 성령의 음성은 “아들이다, 됐냐?”였습니다. 어쨌든 이 체험이 김 목사에게는 너무나 신비하고 은혜로웠습니다. 이후 성령의 강한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성령을 만나는 체험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엘은 성령이 만민에게 부어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신앙인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일어나게 될 은혜를 이렇게 전해 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눅 1:35).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리아만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방법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을 때입니다. 이 말씀을 기도의 문장으로 바꾸어 기도해 보십시오.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덮으소서.”

이 기도를 드리며 나아갈 때,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성령론 공부를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며, 바람처럼, 불처럼, 생수처럼 우리의 삶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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