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질 영들과의 투쟁사였다. 때로는 헤롯 왕으로, 혹은 빌라도 로마총독으로, 혹은 가룟 유다로, 혹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들로 변장한 영들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말할 것도 없이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변장술 아닌가.

예수님께서 세침례를 받으신 뒤 마귀 혹은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 미신자들도 잘 아는 사건인데, 세 가지 시험문제가 있었다. 그 첫 문제는, ‘이 돌들로 명령해서 떡이 되게 해라.’였다. (마 4:3; 눅 4:3).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목숨 걸고 금식기도하셨던 주변장소에는 돌들이 널려 있었다. 그 돌들은 먹음직스러운 떡처럼 보였다. 특히 금식 중인 사람에게랴.

예수님께서는 물론 그 수많은 돌을 가지고도 떡을 만드실 수 있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일만 명 넘게 먹이신 분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단연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사탄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셨다. 그 말 그대로 하면 마귀에게 순종하신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님의 사역에는 육신을 먹이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튼튼하게 먹이는 사역이었다. 그렇다고 육신 먹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시지 않았다. 기도의 원형을 가르치실 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포함시키셨다. 그 기도 덕택에 지금도 지구 위에는 개신교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가장 튼튼한 국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조각글에서는 번역상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 한다. ‘떡’이라 번역된 성경 원어의 단수는 ‘아르토스’, 복수는 ‘아르토이’이다. 이것이 한국말 성경에는 오랫동안 ‘떡’으로만 번역되어왔다. 교회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이 대목을 가르치면 영리한 아이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밥으로 산다는 사실 말이다. 한국인의 식탁에선 떡이 아니라 밥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번역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다. 한국사람들도 지구공동체 추세에 맞추어 밥보다 빵을 주식으로 삼아가고 있다. 그런 추세라면 이 성경말씀도 마땅히 미래지향적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곧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이다.

빵은 이제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쌀빵이나 밀가루 빵보다는 보리빵이 단연 일급 건강식품이다. 예수님께서 큰 기적을 일으켜 수만 명을 먹이셨던 그 보리빵 말이다(요 6:9).

한 가지 덧붙인다. 새 세대를 위하여 무교병(출 12:8), 유교병(출 12:15), 무교절(마 26:17)도 무누룩빵, 누룩빵, 무누룩절로 번역하면 더 좋겠다.  성경말씀은 잘 알아듣는 말로 번역해야 은혜가 더 많기 때문이다(고전 14:13-14).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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