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고의 10년을 우리가 산 것이라는 뉴스가 나온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Spectator와 Axios가 제시한 증거들을 보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빈곤층이 세계 인구의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1987년에는 35%). 아동 사망률이 기록적으로 감소했다. 기근은 사실상 사라졌다. 세계의 절반이 중산층이거나 더 잘 산다. 아동 및 여성 사망률이 1990년 이래 반감되었다. 초등교육은 거의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세계 최저 50% 소득자의 평균 수입이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도 지금 좌절감이 이토록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설문조사 기관 갤럽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 나이가 젊을수록 분노가 더 많고, 걱정과 스트레스도 더 많다. Spectator 특집 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희소식은 무소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기사에서 지리학 연구원 스티븐 수컵과 마크 멜처는 “흉측하고,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기사를 선호하는 언론 매체들에겐 편견이 있다. 경우에 따라 갈등, 불화 그리고 좌절은 신문 혹은 광고 장소가 팔리도록 해준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두 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우리는 항공 여행, 인터넷 통신, 의료 보험 제도와 공공 방위와 같은 온갖 종류의 업무와 서비스를 성취하기 위해 거대한 관료주의를 만들었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비행기를 날게 하는 방법도 모르고 디지털 인프라를 관리할 줄도 모르면서, 제각각 어떤 일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리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우리의 소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좌절한다.

우리의 좌절 뒤에 숨은 한 가지 좌절은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관료주의를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수컵과 멜처는 “독재자 없는 폭정”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 결과, 현재와 미래에 대해 희망 없는 염세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에스라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페르시아 지방 총독과 그의 동료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반대자들은 다리오 왕에게 알리고 답장을 기다렸다(에스라 5장). 다리오 왕은 보물 전각을 조사하게 하여 선대의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는다. 고레스 왕은 예루살렘의 성전 건축뿐 아니라 건축 비용을 왕실에서 내라고 명령했다(에스라 6:2-5).

이에 다리오 왕은 성전 건축을 계속하라 하고 경비를 제공했다(에스라 6:7-10).페르시아 총독과 그들의 동관들은 다리오 왕이 명령한 것을 준행한다(에스라 6:13). 그 결과 유대 배성은 성전 건축을 끝냈고,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했다(에스라 6:16).

우리는 성경과 역사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섭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을 때, 애굽의 2인자가 되어 그들의 가족과 장래를 지켜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달아났을 때, 40년 후에 그가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소 출신 사울이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었을 때, 그가 신약의 절반을 쓰게 될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한이 파트모스 섬으로 쫓겨갔을 때 그가 요한계시록을 쓸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쾌락주의 철학자가 바울 다음으로 위대한 신학자가 된다. 무명의 골칫거리 신부가 종교개혁을 이끈다. 순교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크리스천들에게 영감을 준다.

무서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란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이다. 크리스천들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도 행사가 오는 5월에 개최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가담하고 싶다면, 일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 성령님께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라. 당신이 어디에 있건 영원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능력과 은사와 자원과 영향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그런 다음 주님이 당신을 온전히 사용하시도록 어떤 대가든 치를 각오를 하라.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우리에게 오셨다(요 10:10).그러나 그러한 삶으로 가는 반문화적인 길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월 7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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