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따가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살랑살랑 봄바람이 겨울잠에 빠져 있던 국화꽃 새싹을 일깨워 키운다. 한 뼘 정도 자란 약하디 약한 국화의 어린 순들을 사정없이 잘라서 잘 배합된 거름흙을 담아 놓은 화분에 삼목을 했다.

흙을 가지고 요리하기를 즐기는 나의 취미생활을 옆에서 어쩌다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상하다고도 말하지만 때로는 인정사정없이 잘라내기도 하고 잘려나간 아픔에 몸부림치며 시들시들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애처로워 시원한 물을 흠뻑 뿌려주며 보듬어 주기도 한다.

옛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국화 묘목도 뜨거운 태양볕에 뿌리도 없이 몸부림칠 때 안쓰러워 그늘에 놓고 기르면 빨리 뿌리와 순이 돋아나고 잘 자라기도 하지만, 힘없이 웃자라 가늘고 약하여 탐스럽고 보름달 같이 크고 아름다운 대국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모질게 뜨거운 뙤약볕에서 훈련을 시키며 기른다.

한국에서 가을이면 국화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각양각색 종류의 모양과 색깔, 꽃송이 크기 등등 수많은 국화꽃들 중에서도 나는 대국을 좋아했다. 40여 년 전 미국으로 온 후 손수 길러 보고 싶었지만 뿌리가 달린, 살아 있는 국화를 만날 수 없었다.
몇 년 전 슈퍼마켓에 진열된 화분 중에서 여러 송이 국화꽃이 핀 화분을 발견했다.  꽃송이가 크지는 않지만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사다가 꽃이 진 후 뿌리를 애지중지 차고 안에서 월동을 시켰다.

다음 해 봄에 몇 가닥의 새로운 순이 올라왔다. 한 뼘 정도 자란 후에 서너 마디 길이로 잘라서 심고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5월과 6월 두 차례 꺾어 심은 100여 그루의 어린 것들이 여름철 무더위를 이기고 짙푸른 녹색으로 건강미를 물씬 풍기며 잘도 자랐다.

가을이나 겨울에 화환 속에 들어 있는 대국을 발견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삼목을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봄철에 돋아난 싹을 꺾어 심으면 잘 자라는데 꽃이 피고 난 늙은 가지는 발아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꽃의 크기에 따라 지름이 18cm 이상을 대국, 9cm 내지 17cm를 중국, 9cm 이하를 소국이라 하는데 꽃이 웅장한 대국을 보기 원하면, 어려서부터 중심에 가장 건강한 가지만 남기고 곁순은 모조리 잘라 주어야 한다. 잘라낸 어린 가지들이 아까워서 빈 공간에 심어 놓았더니 모두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국화꽃은 씨앗이 없고 꺾꽂이나 뿌리 번식으로 증식시킨다.

국화꽃의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일본에서 들여다가 많은 색깔과 여러 종류로 개량을 하여 세계적으로 보급이 되었다고 한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주황색, 분홍색 등등 수많은 색깔과 모양, 크기가 다양하게 전 세계적으로 2,000종의 국화가 살고 있다.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 감국 등 들국화라고 불리며 다양하게 분포되어 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직도 한국에서와 같이 일반 가정에서 많이 기르기보다는 꽃꽂이용으로 화훼단지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양한 국화전시회를 흔하게 볼 수 없어 안타깝다.

9월 중순경이 되어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로 짧아지면 국화는 성장을 멈추고 일제히 꽃망울이 형성된다. 먼저 심어서 일찍 성장한 국화는 꽃봉오리가 50센트 동전 만한 크기로 자란 9월 말경에 갑자기 심술궂은 추위가 찾아와서 꽃봉오리 큰 것들이 모조리 얼어 버렸다.

밤늦도록 혼자 백여 개가 넘는 화분들을 땀을 뻘뻘 흘리며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겨 놓았다. 다행히 2차에 삼목하여 키운 몇 그루는 냉해를 입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둥근달을 닮은 노랗고 웅장한 꽃들이 나를 황홀의 경지로 안내한다.

이곳으로 이사한 첫 해라서 깊은 산골인 이곳 날씨를 몰라 몇 그루만 남기고 꽃이 반쯤 누렇게 썩어 들어가는데 누구와 나눌 수 있겠는가? 여름날 매일 저녁에 각종 채소와 꽃들에게 시원한 물을 2시간 넘도록 뿌려 주고, 잡초를 제거하며 “바라고 원하며” 기대했던 꿈이 사라져서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열심히 보살피며 키운 나의 경험은 고스란히 남지 않았는가? 내년에는 올해의 경험을 교훈 삼아 더 훌륭하게 키워서 미국에서도 멋진 국화전시회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

새해 들어서 오늘 처음으로 우박과 흰 눈이 내렸다. 매우 춥다.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건강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생업을 감당할 수 있다.

각종 채소와 꽃 그리고 과일나무들을 가꾸고 보살피고 나누고 즐기는 기쁨 속에 살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가 눈물 나도록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것이 행복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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