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예배 시리즈(14)

예배의 어원적 의미

예배를 쉽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어떤 이들은 찬양이 예배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설교, 성만찬, 기도 등이 예배라고 한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 이르러선 예배를 음악이나 예술, 문화와 접목하려고 한다. 한편 예배의 절차와 의식, 그리고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예배의 본질적, 성경적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예배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아바드 Abad(עבד)”에서 유래되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예배자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헌신이 담겨 있다. 구약 263절에서 293회 쓰였는데, 그 중 75회가 신명기에서 쓰였다. 아바드의 의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 10:12)에 잘 함축되어 있다.

구약의 또 다른 히브리어“샤하아 shachah(שָׁחַד)”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린다는 뜻이다. 이마를 땅에 대고 자신의 전 존재로 하나님 앞에 굴복해 예배 대상의 존재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구약에서 ‘예배’라는 단어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고, 구약 166절에서 172회 사용되었다. 샤하아의 주된 의미가 경외 대상 앞에 엎드려 경배하다여서, 주로 예배라고 번역되었다. 이외에 기름부음 받은 자와 연합되는 구원의 의미가 있다. 샤하아 동사형엔“수영”을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물에 잠겨 넘쳐나게 한다’라고 해석해 구원을 비유한다.

히브리어 “야레 yare(ירא)”는 경외하다, 경의를 표하다(to fear, reverence)라는 뜻으로 구약 305절에서 314회 쓰였다. 야레는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 반응으로 하나님의 주권, 통치, 구원, 심판 등이 반영되어 있다.

신약성서에서 예배의 대표적인 헬라어는 “프로스쿠네오 proskuneō(προσκυνέω)”이며, 그 뜻은 ‘손에 입 맞추다, 존경의 표시로 다른 사람 앞에 엎드린다’이다. 신약 54절에서 65회 사용되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35회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마 4:10; 눅 24:52; 요 4:20, 21). “프로”는 어디를 향해서라는 뜻이고, “스쿠네오”는 입맞춤이란 뜻으로,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을 받으실 때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를 언급하셨을 때 이 단어를 쓰셨다(요한복음 4장).

헬라어 “라투레우오 latreuō (λατρεύω)”는 신에 대한 섬김, 종교적 의식의 뜻을 가지면서 섬김의 행위를 강조한 단어이다. 신약 21절에서 21회 쓰였다. 로마서 12:1에 “영적 예배”로 쓰였는데 영어로 “spiritual service of worship”이라 번역된다. 빌립보서 3:3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로 쓰였다. 이처럼 봉사, 섬김의 개념이 들어 있다.

헬라어 “세보 Sebō(σέβω)”는 히브리어 야레처럼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신약 10절에서10회 사용되었다. 야레가 구약에서 314회 사용된 것에 비해 신약에선 적게 사용되었다. 신약에선 예배를 프로스쿠네오의 입맞춤으로 표현하는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다 친밀하게 연합된다는 의미를 보여 준다.

예배학자가 정의한 예배의 의미

학자들은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 보자. 해롤드 베스트 교수는 저서 『Unceasing Worship』에서 ‘예배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모든 존재와 하는 모든 것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책 『Music Through the Eyes of Faith』에선 “예배는 위대함을 발견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 결과 순종하게 되고, 경외하게 되며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드리는 것이며, 그분에 의해 다루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블록의 책 『For the Glory of God』에선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 자신의 은혜로운 계시에 대한 반응과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순종과 존경의 마음을 행동으로 주권자 앞에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D. A. 카슨은 『Worship by the Book』에서‘예배는 모든 도덕, 지각, 존재로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며, 모든 공경과 가치를 창조주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예배 받기에 합당하시고, 기뻐하신다. 모든 참된 예배는 새 언약에 따라 하나님 중심적이며, 그리스도 예수 중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고, 성령님께 모든 권한이 있다. 이는 우리의 삶 전체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빗 넬슨은『Authentic Worship』에서‘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계시에는 하나님 자신과 목적과 뜻이 거룩하게 비춰지는 것이고, 성령님의 일하심과 가능케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 개인적 관계를 갖게 되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 기쁨의 공경과 경외, 겸손, 순종, 복종 등이 예배자에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데이빗 피터슨은 『Engaging with God』에서 ‘살아계시고 진실한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능하도록 제시하신 방법으로 그분과의 연합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앨런 P. 로스는 『Recalling the Hope of Glory』에서 ‘진정한 예배는 권능과 거룩의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 안에 존재를 다해 기뻐하는 것이다. 이의 의미는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에 대한 자연스러운 찬양을 담고 있으며, 믿음과 순종을 헌신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예배 의식을 통해 언약의 의미를 확신하며, 그리고 영광의 그날 언약이 완전히 성취됨을 확신 가운데 기대하는 것’이라 말했다.

춤 추는 다윗

예배하는 삶

지면 제약 때문에 예배에 대한 어원적 의미와 예배학자들이 말한 의미만 간추려 보았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은 예배가 우리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채널을 돌리듯 삶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사실 우리에게 채널은 하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예배의 의미가 적용되려면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에는 자신의 삶 전체로 예배한 예배자들이 있다.

옥합을 가져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며,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그 발에 부은 여인(눅 7:36~50)이 있고,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올 때,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기쁨과 환희로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왕의 위엄도  잊고 옷이 흘러내릴 정도로 춤추며 찬양했던 다윗(대상 15:25~29)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축들을 모두 잃고, 종들도 죽고, 집이 무너지고, 자식마저 죽었을 때,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한 욥(욥 1:20)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옥합, 왕의 위엄, 전 재산, 자식 등을 잃어도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들의 예배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 즉 여인이 비싼 옥합을 깨뜨렸을 때 바리새인과 주위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 다윗이 찬양했을 때 사울의 딸 미갈이 늘어놓은 불평, 고통을 겪는 욥에게 아내와 친구들이 했던 말, 그 어느 것도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방해하지 못했다.

물론 이렇게 예배하는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길 열망하고, 주님을 높이며 살아갈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 전체로 예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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