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2)

성령론 공부 두 번째 시간에는 “성령이 하시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정민 목사가 쓴 『왜 성령인가?』에 하용조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정민 목사가 하용조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목사님,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그러자 하 목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자녀들을 위해서 한 가지만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합니다.” 하용조 목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유일한 제목은 자녀들의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성령론 공부의 목표도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이미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16). 보혜사는 “돕는자, 중보자,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이 돕는 자인 성령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은 이미 함께하고 계십니다.

아들과 함께한 이재철 목사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배에 오른 후 아이가 “언제 배를 타느냐?”고 계속 묻습니다. 배가 너무 커서 건물 안에 들어온 줄 착각한 것입니다. 배에 탄 것이라 말해도 “아빠는 거짓말쟁이”라며 웁니다. 마침내 제주도에 도착해서 배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고는 그제야 “와! 배 탔다” 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들이 “아빠, 언제 비행기 타느냐?”고 칭얼거립니다. 비행기 안이라고 말하니까, 또 “아빠, 거짓말쟁이” 하면서 웁니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비행기를 보고서야 “와! 비행기 탔다”하고 기뻐합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우리가 꼭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임재를 느끼지 못한 채 “언제 배 타느냐”라고 보채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함께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이미 성령은 믿는 자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야 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과 교제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하시는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면, 성령이 나와 함께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이 하시는 일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의 영

성경에선 성령을 “하나님의 숨”(창 2:7, 겔 37:5), 혹은 “예수의 숨”(요 20:22)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숨은 루아흐(Ruah)입니다. 하나님의 숨은 우리에게 몇 가지 일을 합니다.

먼저 “숨”은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숨이 들어오면 생명이 일어납니다. 죽어 있던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숨이 들어오자,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겔 37장). 하나님께서 인간의 루아흐(숨)를 거두시면 흙으로 돌아가고(시 104:29), 하나님의 루아흐를 보내시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납니다(시 104:30). 그래서 성령의 이름 가운데 하나는 “생명의 영”(혹은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재철 목사는 『새신자반』이라는 책에서 한 장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날 장로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장로가 방문을 열자 불이 온 천장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장로는 황급히 소화기를 찾아 손잡이를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핀을 뽑아야 작동하는 사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장로는 다급한 마음에 “주님” 하고 외치며 소화기의 손잡이를 다시 눌렀습니다. 그 순간 소화액이 뿜어져 나와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사람들이 몰려와 어떻게 불을 껐느냐고 물어서 소화기로 껐다고 대답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소화기의 안전핀이 그대로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안전핀이 꽂힌 소화기로 불을 껐다는 장로의 말을 믿지 못했지만, 장로는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영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살아나는 역사, 회복되는 역사,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믿음의 영

성령이 하시는 또 다른 일은 믿음을 주시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생기는 것은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로마서 8: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 믿는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고,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이 믿어지고, 십자가의 은혜가 믿어지는 기적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자녀와 부인만 교회에 내려 주고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예배가 끝나면 그들을 데리고 가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걸 힘들어합니다. 예배에 참석해도 설교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성경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영이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믿음에 관한 일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고, “예수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성령에 대한 중요한 고백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고 넓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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