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장 1-40절

리브가와 엘리에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작품, 18세기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빌어줄 테니 별미를 만들어오라는 장면과 리브가가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라고 지시하는 장면만큼 자식을 둘러싼 부부 사이의 편애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이삭은 에서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아들로 간주한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 원문을 보면 에서는 "그의 아들"(5) 곧 이삭의 아들로 불리고 야곱은 "그녀의 아들"(6) 곧 리브가의 아들로 불린다. 각각의 아들을 부를 때 이삭도 리브가도 자신의 아들에게만 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선별적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축복의 대상이 에서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많은 예문이 보여주듯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는 장남을 포함한 아들들을 모두 불러 마지막 유언과 함께 축복을 준 다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삭은 이러한 규범을 무시하고 장남에게만 축복을 주려 한 것이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베풀어 줄 테니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할 때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우리말 번역에 ‘들었다’로 되어 있는 ‘엿듣다’라는 히브리어는 그 시제가 분사 형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동작이 아니라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시제이다. 리브가는 항상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브가는 눈먼 남편을 속여서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을 받아낼 수 있도록 계략을 꾸민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가 되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도록 세 가지 방안을 실천한다(8-17). 먼저 에서가 사냥감을 잡아와 요리한 것처럼 염소 고기를 요리한다. 둘째로 눈먼 사람은 냄새에 예민하기에 야곱에게서 에서 냄새가 나도록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힌다. 셋째로 야곱의 매끄러운 살결을 가리기 위해 새끼 염소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감아 준다.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다. 장남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 자신이 편애하는 작은 아들이 받도록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는 몇 가지 합당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리브가가 꾸민 책략은 야곱에 대한 편애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임신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마음에 품고 20년을 살아왔다. 그녀가 받은 계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삭이 이 신탁을 몰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리브가에게만 주어졌고, 성경 어디에도 리브가가 이 계시를 남편 이삭에게 전했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야곱이 아닌 에서를 축복하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임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리브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속임수, 즉 '거룩한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다.

이렇게 리브가의 행위를 해석한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남편을 지배하고 조종한 여자. 남편을 속인 여자로 낙인찍기보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행동한 여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눈먼 남편을 속이고 야곱에게 속임수를 쓰도록 지시한 리브가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변명할 길이 없다. 또 세상 속에서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보다 자기 손으로 그 계획을 성취시키려 한 허물도 변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리브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행동한 여성, 신탁의 주인공인 야곱을 위해 저주받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13) 믿음의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리브가 또한 시련을 통해 믿음의 여인이 되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다면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신탁에 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리브가는 훗날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세워진다. 야곱이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품성과 자질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책략을 꾸밀 수 있었던 이유이다. 셋째, 에서가 동족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도 리브가의 행위를 정당화해 줄 수 있다.

창세기 기자는 본문 배치를 통해서 그 정당화를 시도한다. 기자는 에서가 두 명의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기록한 다음 즉시 야곱이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부족한 존재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속임수를 써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한 리브가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다.

게다가 에서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 28:6-9).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장가를 들었으면서 또 장가를 들었다. 큰아버지의 자식이니 동족이 아니냐는 시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 인물이었다.

말라기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 1:2-3).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것은 에서가 아니라 에서의 그릇된 행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속물적인 태도, 반항적 태도를 미워하신 것이다. 에서가 부모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장자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넷째, 장자 상속권이 실제로 준수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유다의 쌍둥이 아들 세라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도,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도 모두 장자가 아니었다. 다윗도 솔로몬도 장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브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에서가 분노하여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우자 리브가는 멀리 친정 오빠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 야곱이 떠난 뒤 리브가의 말년은 비참하고 공허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서에게 구박도 받았을 것이다. 이방 며느리들의 냉대도 받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성경은 리브가의 말년이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는가를 상징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다. 리브가의 이름이 28장 5절과 35장 9절에 등장하는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에 대한 기사이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성경은 리브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유모의 죽음은 언급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족장들과 족장의 아내들의 죽음은 모두 다 기록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왜 성경은 리브가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부부 사이에 한쪽이 죽으면 남아 있는 사람은 먼저 간 배우자를 애도한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그랬고, 라헬이 죽었을 때 야곱이 그랬다. 하지만 리브가가 죽었을 때 이삭은 애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리브가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치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리브가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리브가의 이야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삶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손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 이루어진다. 약점, 조급함, 어리석음 등 수없이 많은 인간의 제약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이기적인 편애라는 잘못된 선택 속에는 리브가의 올곧은 헌신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셔서 계획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남편 하나 믿고 고향을 떠났던 리브가는 하나님의 신탁을 붙들고 야곱을 선택했고, 야곱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잊힌 여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고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사실 믿음의 가문의 초기에 살았던 리브가에게는 배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