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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창 27:1-40)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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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2  04: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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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가장 좋아하는 성경말씀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신명기 28:6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누가복음 6:28인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더하면 복으로 시작해 복으로 끝나는 기독교가 되고 맙니다.

창세기 27:1-40 또한 축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는 리브가에게 초점을 맞추고 야곱이 어떻게 장자 축복을 받아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야곱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가 축복을 가로채는 장면과 그의 내면의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형의 옷을 걸친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어머니 리브가가 요리한 염소고기를 들고 아버지 앞에 섭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가문의 영적 축복을 청하려고 아버지 앞에 선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이 간절히 받고 싶어 했던 축복입니다. 에서에게 송두리째 빼앗긴 채 늘 갈급했던 세계입니다. 야곱이 갈급했던 대상 앞에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릅니다.

"내 아버지여!"는 야곱이 한 말 중에서 거짓말이 아닌 유일한 말입니다. 이어진 말들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이삭이 그에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신분을 에서로 둔갑시키고, 염소고기를 사냥 고기로 둔갑시켜 축복을 청한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라고 두 번째로 물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가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쉽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야곱은 목적 달성을 위해 십계명 중 제3계명인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를 어긴 첫 번째 성경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이는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은 자기 앞에 있는 아들의 목소리가 에서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자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21)라고 말합니다. 그는 야곱의 손을 만져보고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라고 중얼거립니다. 야곱의 매끈한 손과 목은 염소 새끼의 가죽을 감아 놓은 어머니의 위장술 덕으로 에서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이삭은 의심스러워서 한 번 더 묻습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24) 이렇게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야곱은 흔들리지 않고 "그러하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거짓말하는 야곱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의심하는 아버지 앞에서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하늘이 벼락을 내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을 것입니다. 느릿느릿 음식을 먹는 아버지를 보면서 야곱의 마음은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에서가 들이닥치면 어떻게 하나 연신 장막 입구를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거의 발각당할 뻔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이삭 앞에서 물러나자마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던 것입니다(30).

눈먼 이삭은 야곱을 에서라고 믿고 축복을 베풉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7-29).

야곱은 아버지에게서 가슴 벅찬 축복을 받아냅니다. 다산과 부 그리고 성공과 권한에 대한 약속을 부여받습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움켜쥔 자'라는 자기 이름에 걸맞게 장자의 유업을 움켜쥔 것입니다. 이 축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3대 족장 이름에 에서가 아닌 야곱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성경은 얼마나 자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지 모릅니다.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야곱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마 1:2)

여기서 우리는 이삭이 야곱에게 준 축복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의 입장에선 야곱이 아니라 맏아들 에서를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사냥꾼을 축복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한다는 내용은 농부를 향한 축복입니다. 에서는 들판을 뛰어다니는 사냥꾼이었고 야곱은 천막에 머무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부지불식간에 야곱을 축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들려 주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기가 저지른 범죄의 대가로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를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권한을 빼앗았다는 죄의식 속에서 2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제 야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복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속임수를 써서 축복을 받아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 그릇된 방법을 취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닙니다.

야곱 이야기에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문제 있는 가정, 분열된 가정, 달리 말해 비신앙적인 가정에도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점입니다. 이삭의 가정은 건강하고 조화를 이룬 가정이 아닙니다. 야곱과 에서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싸웠고, 이삭과 리브가는 편애하는 자식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입니다.

속임수는 야곱 집안을 늘 따라다니던 죄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어떻게 남을 속이는지 보고 자랐습니다. 야곱이 청년으로 성장할 즈음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었을 때, 가족 모두가 블레셋 지방으로 이주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야곱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리켜 자기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속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창 26:1-11). 알고 보면 이삭의 뻔뻔한 행위는 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역시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갔을 때 아내인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사라에게도 자기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고 강요하였습니다(12:1-10). 그런 잘못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똑같은 잘못을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 반복했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도 만만치 않습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은 자신의 딸 라헬에 대한 조카 야곱의 사랑을 이용하여 14년 동안이나 노동 착취를 했습니다. 더구나 조카인 야곱에게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막상 결혼 당일에는 첫째 딸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창 29:21-28).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리브가가 남편을 속이는 행위는 야곱의 집안에 계속 따라다니던 죄의 모습입니다. 그 죄악은 야곱의 자식들에게도 전달됩니다. 야곱의 아들 열 명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먹은 뒤 짐승이 동생을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37:25-35). 뿐만 아니라 이들은 여동생이 강간당했을 때,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여동생 디나와 세겜 왕자의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거짓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움직이지 못하자 그 틈을 이용해 칼을 들고 달려가 모조리 찔러 죽였습니다(34:1-29).

이런 집안에서 유독 정직한 사람이 에서입니다. 성경 본문 어디에도 에서가 거짓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축복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진실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야곱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축복은 현세적인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축복은 현세적 축복과는 거리가 먼 영적 축복이었습니다. 이 점은 에서와 야곱의 인생을 비교해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했지만, 물질적으로 비참하게 살았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야곱보다 더 많은 세상을 얻었습니다. 400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휘하에 있었고, 에돔이라는 부족국가를 통치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서 축복을 받아냈지만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축복의 내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보수로 착취당했고, 귀향길에 만난, 하나님으로 밝혀진 남자와의 씨름에서 환도뼈가 부러져 평생 장애를 지녀야 했으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귀향길에 잃고 그 시신을 길목에 묻어야 했습니다. 또 난폭하고 무분별한 자식들로 인해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식들이 세겜 남자들을 대량 학살하는 바람에 주변 가나안 족속들의 복수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장남 르우벤이 그의 첩이었던 실바를 건드리는 불륜을 저질렀는가 하면, 10명의 아들들이 작당을 해서 그의 애지중지하던 아들 요셉을 죽이려 하다가 상인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년기에는 혹독한 흉년으로 인해 어린 손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아야 했으며, 또 다시 정든 고향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바로에게 그가 하던 말 그대로 모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축복의 면류관을 받았지만 그것은 가시로 만든 면류관이었습니다.

야곱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된 것은 그가 받은 축복이 남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 개인이 아니라 미래의 후손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야곱이 받은 복은 남을 위한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업의 올바른 도구가 되기 위해 야곱은 일련의 시험들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사 55:13). 우리 인생에 놓인 갖가지 상처와 아픔 그리고 장애물들이 바뀌어 풍성한 열매가 된다는 신비한 약속입니다.

인생의 고난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일 것입니다. '고난이 축복', '고난 받는 것이 은혜'라는 믿음의 고백은 우리가 받아야 할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의 고백일 것입니다.

거짓으로 점철된 야곱과 그의 가족의 모습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하찮게 보시지 않고, 깎고 가다듬어 세상을 위한 축복의 도구로 만드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우리 인생에 닥친 고난을 통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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