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마음에 한국의 친구 목사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예상했던 답변이 날아왔습니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예배 인원도 줄고, 집회를 꺼리는 경향 때문에 모든 모임들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의학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세계는 새로운 질병의 출현으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겪었습니다. 조류의 분비물과 배설물을 통해 감염돼 1,7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조류독감(AI, 1997년), 중국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 사스(SARS, 2002년), 북미에서 발생해 214개국에 퍼진 신종 인플루엔자(H1N1, 2009년),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라 불리는 메르스(MERS, 2012년), 사망율이 60%에 달했던 에볼라(Ebola, 2014년), 그리고 현재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들은 경악했고, 방역과 백신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 질병들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의술의 발달 만큼이나 질병도 발달한다는 법칙을 발견했고,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도 크지만 2차적인 피해도 엄청납니다. 질병의 전파 속도는 훨씬 더 빨라졌고 범위는 광역화되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교류가 줄어듭니다. 이는 소비및 생산의 감소로 이어지고, 경제전반에 걸쳐 지표 하락 현상이 나타납니다.

경제와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불안심리는 강화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급기야 공격적으로 행동합니다. 환자를 혐오하거나 발생 지역 사람들을 차별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는 이기적인 생명 경시 풍조와 맞물려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킵니다. 그대로 두면 사회는 황폐해지고 인간은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답답하고 우울해집니다. 어디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성경을 묵상하며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계시록에 의하면 악은 없어진 듯하다가 다시 나타나고, 전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질병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치료약으로 정복된 듯하지만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인간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질병과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레위기를 보면 광야 이동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정결 규례들이 나옵니다.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악성 피부병이나 의복이나 가죽에 생기는 곰팡이, 유출병 등에 관한 규례가 나옵니다(레13-15장).

현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수준 높은 질병 관리 지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사용한 의류, 침구, 가정용품 등을 깨끗이 소독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발병자의 집은 폐쇄되기도 합니다. 손과 몸을 깨끗이 씻을 것을 강조하고 병이 다 낫기까지 공동체와 격리시킵니다. 이런 제한 조치는 당시 의사나 보건소장 역할을 했던 제사장의 완치 판정이 있어야 풀릴 수 있었습니다. 치료약이 없었던 시절에 질병으로부터 환자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환자 또는 보균자들의 증상이 완치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올 때 치르는 종교적 의식이 주목을 끕니다. 병이 나은 후(죽었다 살아난 후)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의 번제,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공동체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배상한다는 의미의 속건제, 그리고 질병의 근본 원인이 창조질서를 어긴 자신의 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뜻의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규정들을 통해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질병이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죄의 결과이며, 그에 대한 심판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유사한 사건을 겪을 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영적 태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보건위생학적으로 청결과 건강한 식생활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백신과 치료약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한 창조질서의 파괴가 원인임을 인정하고, 성찰과 회개, 겸손과 청지기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영화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대사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두려움을 겸손과 사랑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교만과 공포의 바이러스가 하루 빨리 퇴치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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