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광고회사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광고회사는 어떤 거래처(광고주)를 두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 회사는 운 좋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를 광고주로 두고 있다.

이 회사의 미국지사에는 소위 말하는 ‘재벌가 자제’ A가 근무한다. 아직 어리고 직급도 낮아 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재벌 티도 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직원이나 우리 같은 협력업체 직원을 대할 때 공손하며 항상 높임말을 쓴다. 무거운 걸 나를 때는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와줘 우리가 송구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너 집안 사람이며, 고속 승진을 거쳐 장차 회사를 물려받거나, 최소 계열사 사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A를 볼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 회사를 세웠고,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귀티’가 잘잘 흐르는 그를 보면, 부럽다는 것 외에도 그의 신분은 한없이 높아 보이고 나는 그만큼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는 나와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찍 미국에 유학 와서 영어가 유창하다. 물론 학비 대출금을 갚은 일도 없다. 집안 전통에 따라 일찍 결혼했는데, 처가  또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임은 물론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고, 모아둔 재산이라곤 은퇴 연금이 고작인 내 신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어 낙심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위로가 되는 게 달란트 비유이다(마 25:14-30). 달란트 비유에는 칭찬받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 외에 책망받은 종이 등장한다. 주인은 이 종에게도 한 달란트를 맡기셨다. 한  달란트는 요즘 시세로 60만 불 정도이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주인(하나님)은 못난 종에게도 한 달란트나 맡기신 것이다.

A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라면 나는 최소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아닐까? 그리고 A에게 맡기지 않은 것 가운데 나에게만 맡긴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남이 나보다 더 가졌다는 사실보다, 주인이 나에게 맡긴 것을 땅에 묻어두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주인은 더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은 걸 원하시고, 적게 맡긴 자에게는 적게 원하신다. 다섯 달란트 맡긴 자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맡긴 자가 두 달란트를 또 남겼을 때 주인이 칭찬하신 것처럼,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또 한 달란트를 남겼으면 주인으로부터 동일하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받았을 것이다.

끝으로 대부분의 종이 한 달란트 받은 자라는 점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누구처럼 다섯 달란트 맡은 자는 극히 드물고, 기껏해야 주변에 두 달란트 정도 받은 자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달란트 맡긴 자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긴 자와 동일하게 사랑하신다. 어쩌면 한 달란트 맡긴 자를 더 주목하실지도 모른다. 링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혹시 너무 평범해서, 또는 잘 난 구석이 없어서 낙심할 때가 있는가?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잘난 사람 만큼,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동일하게, 아니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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