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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야곱창세기 27:41-28:16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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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8  08: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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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 급하고 고집 센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훔쳐간 야곱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동생 야곱을 죽여 버리겠다고 '속으로' 맹세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나의 동생 야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42-44절을 보면 에서의 마음이 얼마나 분노와 복수심으로 끓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에서의 살의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보호하고자 서둘러 방도를 찾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 땅 밧단 아람으로 야곱을 보내기로 합니다. 그녀는 야곱에게 "네 형의 분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고 말합니다(44). 그러나 "몇 날 동안"은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되고 말았습니다.

리브가는 남편에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둘러댑니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46)라고 말할 뿐, 진짜 의도는 밝히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결정권을 남편에게 넘깁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영리한 행동 때문에 야곱은 정당한 명분 속에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습니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 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창 28:1-2).

하란까지 가려면,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을 거쳐 시리아를 통과한 뒤 메소포타미아까지 가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야곱의 여정은 밤에 시작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게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창 28:10-11).

이렇게 시작된 야곱의 여정은 동이 터오는 시간에 마침내 끝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 32:31). 랍비들은 야곱의 여정에서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밤과 새벽은 야곱의 내적 여정을 암시한다고 해석합니다. 20년은 야곱의 내면 변화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말입니다.

해가 지자 야곱은 돌을 베개 삼아 황량한 들판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들판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추위도 추위려니와 언제 들짐승의 공격을 받을지, 강도떼가 나타나 금품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장자권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까지 받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비참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 죄의식과 회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끝없는 걱정이 밀려오고 또 밀려왔을 것입니다.

샤갈, 야곱의 꿈

인생에서 처음 겪는 고통의 시간에 야곱은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꿈을 통해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야곱은 일곱 번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데, 이번이 첫 번째 만남입니다. 그는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와 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반드시 지금의 이 자리로 데려오겠다는 맹세를 듣습니다.

야곱의 베델 체험은 눈에 보이는 '야곱이 머물렀던 자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야곱이 정말로 머물렀던 자리'를 구분하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야곱이 머물렀던 자리’는 비참하고 불안한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과 가족과 고향을 다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야곱이 정말로 머물렀던 자리'는 하나님의 천사들로 붐비는 거룩한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사다리와 계시와 약속을 통해 돌보아 주시는 신적인 자리였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정말로 머무르고 있는 자리'를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두운 삶을 은총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사다리를 보여 주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계시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28:13). 하나님께서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야곱에게 다가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신 후 야곱에게 축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3-15).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가 잃어버린 세계, 즉 가족과 고향 그리고 축복받은 자의 신원이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에 '나'라는 주어가 세 번 나타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섯 번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 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 그 후손을 통해 다른 종족들도 혜택을 입게 될 것이라는 약속,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다가 그를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야곱에게는 마지막 약속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많은 선물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확실한 선물입니다. 다른 약속들은 야곱의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현세적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축복이요 남을 위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현세적으로 받은 축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것이 그가 실제로 누린 복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복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15:10)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큰 축복은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과 주님이라 부르는 예수님께서 삶의 굽이마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야곱의 베델 사건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땅과 후손을 약속받고, 하나님께서 늘 그와 함께하실 것이며,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착하게 살았거나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는 사기를 쳤고 불효막심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란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는 만큼 이미 사랑하고 계심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야곱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초대합니다. 야곱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까닭이 무엇인가를 보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보게 해줍니다. 야곱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까닭은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분을 무시해도, 그분을 거절해도 그분께 반항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그 사랑을 감할 수 없고, 우리의 선이 그분의 사랑을 증가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바보스런 행동이 그 사랑을 위태롭게 만들 수 없고, 우리의 충실함이 그 사랑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기에 덜 사랑하시고, 성공했기에 더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도망자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과 흡사합니다. 우리의 쫓기는 삶, 막막한 현실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가 천사들로 붐비는 하늘로 연결된 사다리가 있는 장소이며 축복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주님과 함께하는 평탄한 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내밀어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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