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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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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5  06: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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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세기 28:16-22).

야곱의 꿈을 통해 꿈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야곱은 꿈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자신이 꾼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꿈이 준 메시지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복된 꿈에 대한 야곱의 응답은 탄성과 이름 부여, 돌 제단을 쌓아 드림 그리고 서원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야곱의 탄성은 하나님 현존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강조하면서 이루어진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만일 야곱이 자신이 잠든 자리가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자리임을 미리 알았다면, 경외감 때문에 감히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야곱은 탄성을 지른 후에 자신이 누웠던 장소에 이름을 부여한다. 원래 그 장소의 이름은 루스였는데, 벧엘이라 이름짓는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꿈에 대한 야곱의 두 번째 응답은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간밤의 꿈을 잊지 않기 위해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딱딱하고 거친 물체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것을 성스러운 제단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로 야곱은 돌 제단 앞에서 서원 기도를 바친다. 일부 학자들은 야곱의 서원을 흥정이 담긴 값싼 서원으로 본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물에 관계없이 무조건 그를 보호하고 사랑할 것을 약속하셨는데, 야곱의 서원은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야곱의 서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의 기도문에 감사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야곱의 서원을 흥정으로 해석한 학자들은 야곱의 참된 회심은 벧엘이 아니라 얍복강가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야곱의 서원을 합당하다고 본다. 훗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야곱이 이름 지은 벧엘이란 지명을 수용하고 야곱의 서원을 상기시키셨다는 것이다. 참된 서원이 되기 위해선 하나님과 흥정할 수 없다. 마르티니는 야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다 이루어지면 보답하겠다고 서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존재 깊숙이 각인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간밤의 꿈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돌을 세웠듯이 서원기도도 같은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티니는 영적 체험을 존재 깊숙이 각인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우리의 천부적 직관들을 마음과 기억 속에 막연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에게 종종 은총의 순간들, 즉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체험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잊힌다. 우리가 그것들을 기억 안에 어떤 식으로든 각인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예수회 수련 과정에 상기 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행위 뒤에 잠시 그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다. 서둘러 다음 행위로 넘어가지 않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행위와 행위 사이에 공백을 만드는 것이다. 필립 얀시는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끌려갈 수밖에 없다. 결국 성취와 경쟁을 우선시하는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기 훈련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도록 해준다.

이제 꿈을 꾸고 난 후 야곱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외적으로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여전히 집에서 쫓겨난 나그네였고 앞날은 불투명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꿈을 꾸기 전까지 야곱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었고 불안과 근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나서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졌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뒤로 그의 내면은 희망과 평화와 활기로 가득 찼다.

그가 하란 땅으로 가는 실제적 이유는 에서의 복수를 피하기 위한 것이고 표면적 이유는 동족 여인을 만나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이 되었다.

하란 땅을 향한 야곱의 발걸음이 얼마나 힘찬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그의 발을 들어서 하란을 향해 떠났다"(29:1의 원문 번역). 그는 하란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야곱처럼 꿈을 소중히 여기고 꿈이 전하는 메시지에 응답할 때 우리 삶은 변화할 수 있다. 꿈은 유한한 인간에게 생명을 제공한다. 꿈은 좌절한 인간에게 용기를 준다. 꿈은 방황하는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성경에는 꿈 이야기가 넘친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어릴 때 꾼 꿈을 잊지 않고 간직했다. 솔로몬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던 중,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청하라고 하셨다. 솔로몬은 백성을 잘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이 마음에 들어서 지혜는 물론 부와 명예까지 주셨다. 뒤이어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열상 3:15)는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선물은 놀랍게도 꿈을 통해 주어졌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민수기 12:6 말씀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에 근거하여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았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신다. 때로는 은사로 때로는 꿈으로,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꿈에서도 하나님을 체험하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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