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예배 시리즈 (17)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기 전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타락해 있었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라고 경고했고,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기원전 598년,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기 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했다.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는 달라도,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호세아 6: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를 보면,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를  원하셨는데, 바로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다. 여기서 인애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다. 헤세드는 사랑하다, 연모하다, 자비를 베풀다는 뜻을 가진 단어 ‘하싸드’에서 유래했다. ESV 영어성경에는 헤세드가 “steadfast love”로 번역되어 있고, 최근 발간된 한국어 성경에는 ‘사랑’이라 번역되어 있다.

헤세드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랑으로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헤세드)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헤세드)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헤세드)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31:16),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헤세드)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시 31:21) 등의 성경 구절에서 사용되었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 백성의 사랑도 의미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특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를 뜻한다. 

호세아 6:6에서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구약성경에서 언급한 제사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짐승을 잡아 그 살과 피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써 죄를 용서받는 행위이다. 번제는 짐승을 잡되 각을 떠서 제단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고기가 다 탈 때까지 기다리면서 연기로 드리는 제사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번제와 제사들을 드리라고 명령하셨는데, 호세아 시대에 와서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제사와 같은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선 호세아를 통해 그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본질을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호세아 시대의 북 이스라엘과 이사야 시대의 남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타락해, 본질 없는 의식만 무성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보셨던,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은 상태였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마가복음 11:12-17).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던 자들을 말과 행동으로 꾸짖는 내용이다. 유월절은 어린 양을 잡아 출애굽을 기념하고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예루살렘 사방 30km 이내에 사는 성인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에 모여든 장정들 숫자만 13만 명이었다고 하니, 여자와 아이들을 합하면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이다. 그들이 바친 희생양만 해도 25만 마리가 족히 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그러나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거대한 의식만 있을 뿐 그 안에 본질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호세아 6:6을 인용해,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42)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 공생애 시기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헤세드가 없었다. 

이사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수한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은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0-17)

무수히 많은 제사와 제물이 그 당시 있었지만 그들의 제물은 헛된 것이었고, 그들의 제사는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전혀 기뻐하시지 않고 도리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유월절에 성전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장사하는 모습을 당연히 여기고 현실에 순응했지만,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셨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다 (요 2:15). 이를 보고 제자들은 시편 69:9 말씀을 기억하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예수님께 있음을 알았다(요 2:17). 제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제외하고 그들 안에는 헤세드가 없었던 것이다. 

『목사와 설교』의 저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영적으로 침체해 있던 영국교회를 향해 형식적인 예배 대신에 본질이 살아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하며, 보편적인 메시지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야 하며, 성령님의 자리가 없는 대신에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면서 예배 회복을 촉구했다. 호세아도, 이사야도, 예수님도, 로이드 존스 목사도 헤세드가 담긴 예배의 회복을 외쳤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공적 예배가 중단되는 위기에 처한 요즘, 회중 없는 예배당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흘리는 어느 목회자의 눈물을 보면서,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헤세드가 담긴 예배가 이번 기회에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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