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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빼!
신양숙  |  일리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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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5  0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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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 도넛집 딸 혜수, 낙원 여인숙집 딸 금희와 나는 삼족 삼총사였다. 줄넘기 천재 혜수, 100미터 달리기 대표 금희, 족구왕 나. 삼족은 발로 하는 운동에 재능을 보여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학교가 끝나면 혜수 엄마가 챙겨준 찹쌀 도넛을 먹으며 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 거리를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재잘거리며 걸어다녔다. 삼족은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걸어다니면서 더욱 친해졌다.

금희네 낙원 여인숙은 길가에 있어서, 금희는 집에 도착하면 주위를 살피다 누가 볼세라 재빨리 들어가곤 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금희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금희 엄마는 자식들과 살기 위해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집을 개조해 방이 여러 개 달린 여인숙을 개업했다. 말이 여인숙이지 하숙집 같았다. 금희가 들려 주는 여인숙 투숙객들의 사연은 소설책보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금희의 화려한 말솜씨는 국어시간에 선생님 대신 가끔 일일 이야기 교사가 되기도 할 만큼 출중했다.

그날도 금희의 맛깔나는 얘기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여인숙 앞에 경찰차가 와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금희가 혼잣말로 “7호 오빠 또 사고 쳤나보네. 이번엔 정말 방 빼야 할지도 모르는데...”했다. 금희네 여인숙엔 장기 투숙객이 많았다. 금희는 특히 7호실 오빠 얘기를 자주했다. 여인숙에선 그를 법무사로 부르며, 고시공부하다 그만둔 뒤 작은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투숙객들의 크고 작은 법적 문제들을 상담해 주고, 금희 엄마가 사업상 겪게 되는문제들을 변호사보다 더 잘 해결해 준다고 했다.

7호실은 벌써 2년 넘게 투숙 중인데 뭔가 미스터리한 점들이 있어서 호기심 많은 금희의 관심 대상이기도 했다. 가끔 목발 짚는 예쁜 아줌마가 방문하는 것 빼곤 딱히 친구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목발 아줌마가 다녀가면 7호실은 술을 많이 마시고 가끔씩 소란을 피우기도 해서 금희 엄마에게 방 빼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처음엔 부인인 줄 알았을 만큼 젊고 예쁜 목발 아줌마는 7호실 엄마였다. 금희 엄마는 그런 7호실의 사연을 알고 있는 듯했으나, 아무도 7호실 얘기를 함부로 못하도록 단속했다.

금희 엄마가 보증 서고 각서까지 쓰면서 간신히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으나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평소엔 재구야, 하고 부르던 금희 엄마가 7호 하고 방 번호를 부를 땐 화가 많이 났거나 사무적인 일을 처리할 때이다.

“7호, 당장 방 빼라.”

금희 엄마의 여인숙 운영 방침은 돈 없고, 힘 없고, 누추한 삶이라도 마음만은 부자로 새 출발을 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 식구가 들어오면 서로 알고 지내라고 인사를 시키곤 했다.

그날 7호실이 목발 아줌마에게 욕설과 행패를 부리다가 주변의 신고로 경찰이 오고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금희 엄마는 아직도 씩씩거리는 7호실에게 “니 엄마가 정말 니 앞에서 죽으면 니 분노가 풀리겠나? 그러면 니 안에 또 다른 한이 남는다는 걸 모르나? 아니, 고시 공부까지 한 놈이 앞뒤가 왜 이렇게 막혔어? 방도 빼고 니 마음에 있는 증오와 분노의 돌도 빼라 이놈아!” 하며 눈물을 훔쳤다.

어느 사장님의 작은 부인이 된 7호실 엄마는 본부인의 식구들에게 매를 맞아서 불구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은 부인으로 사는 엄마가 너무 싫어서 공부도 포기하고 집을 나온 7호실이 부모에 대한 원망을 삶의 에너지로 삼는것 같아서 금희 엄마는 늘 안타까워 했다.

금희 엄마는 7호실이 마음에 분노를 키우는 게 안타까워 화창하게 기분 좋은 날이면 방문을 열어젖히고 청소하면서, “우리 마음도 이래 청소되면 좋을 텐데”하며, 7호실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늦은 밤, 7호실이 금희 엄마를 찾았다.

“아줌마, 제가 잘못했어요. 방 빼라 소리만 말아 주세요” 하며 용서를 구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잘못했단 소릴 한 적이 없기에 금희 엄마도 그런 7호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줌마 말씀대로 증오와 분노의 투숙객을 제 마음의 방에서 내보내도록 노력해 볼게요. 사실 저도 괴로워요. 불쌍한 엄마를 보면 반가운 나보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내가 먼저 나가요. 이젠 내가 괴로워서 그만두고 싶어요”

그날, 늦은 밤에 낙원 여인숙에선 삼겹살 파티가 열렸다.

7호실의 새 출발을 위해!

증오의 방 빼! 분노의 방 빼! 시기, 질투의 방 빼! 화이팅!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예레미야 1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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