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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 감염자와 신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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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4  0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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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만 명이 될 수 있다는 예측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정점으로 치닫는 2주 동안 날마다 2,214명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는 말이다.

이 질병의 가장 힘든 부분은 무증상자로 인해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CDC 디렉터는 이번 주에 새로운 뉴스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증상 감염자 숫자가 중요한데, 대략 25% 정도일지 모른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전염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증상이 심해지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바이러스를 내뿜고 있다. 아마 증상을 보이기 전 48시간 동안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 누구나, 그들이 자각하건 아니건 우리를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도 무증상인 동안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이에 필적하는 병을 찾아 보려면 1세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CDC에 따르면, “1918년에 유행한 독감이 근세사에 가장 심각한 유행병이었다. 지구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5억 명이 감염되었다. 사망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최소 5천만 명이었고 미국에서 대략 675,000명이 사망했다. 역사가인 존 배리(John Barry)는 1918년 독감이 “인류 역사상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었던” 전염병이라고 기술했다. 그는 독감 희생자들이 “예외적인 강도와 속도"로 죽었음을 지적한다.

배리에 의하면, “1918년의 공포는 선박의 앞전에서 넘실대는 파도처럼 바이러스를 앞질러 퍼져나갔다. 주민과 정부와 언론은 공포를 통제할 수 없었다.”면서 배리는 “알려지지 않은 짐승이 정글 속에서 우리를 추적하는 동안, 마음의 어두움 속에서 테러가 자란다. 어두움 속 공포의 물리적 발현인 것이다. 공포 영화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알지 못해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하는, 미지의 불투명한 위협에 대한 공포를 자라게 한다.”

그러나 “모든 공포 영화에서, 일단 괴물이 나타나면, 공포는 단단하게 압축되어 줄어든다. 그래도 공포는 남아 있다. 막다른 공황 상태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의 확산에 의해 창조된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제노포비아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되어 왔다. 특히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제노포비아가 우리를 쇠약하게 만든다.

오늘 많은 이들이 겪는 모습이다. 불안한 나날들이다. 그 무서운 9/11 공격도 일부 미국인들만 피해를 입었다. 대공황도 우리를 육체적으로 위협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상황이 악화될지? 전염병이 물러간 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지? 아니면 내가 죽을지?

가장 잘못된 응답은 이러한 위험한 현실을 부인하는 현실도피이다.

프레드릭 비크너는 “세상에 고통이 횡행하는 것을 부인하기. 수그러들지 않는 악의 만연을 부인하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해결하실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고통과 악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기. 특히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기.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 약속을 강조하며 고통이나 악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무시하라고 부추기기. 죽음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태연한 척하기. 신앙을 위협하는 고약한 사실들의 직면을 거절하면서 당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이 모두가 종교를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크너의 지적대로 "죄수나 노예가 말하듯, 도망치고픈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고 말씀하셨다. (…) 낡은 본성, 속임수, 자기 기만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고통에 대한 책임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고통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리는 최고의 순간은 나라는 존재의 새장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잠시 동안 우리라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들이다.”라고 비크너는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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