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현존을 느끼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은혜를 경험하라"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주간 행사를 온라인으로 치르고 있다. 개신교회들과 크리스천들이 가상의 세상에서 모이고 있으며, 바티칸에서 행해진 미사와 녹화된 강론 동영상을 셀폰으로 보고 있다.

이는 매우 민감한 주제이다. 어떤 이들은 예배에 대한 정부의 제한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종교와 정부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제한이 종교 모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모든 행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 예배를 "essential" 기능으로 분류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한에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앨버트 몰러 박사와 켈리 섀켈포드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선언문에 동의한다. "교회들에게 모임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종교를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고  비합리적인 위협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우리 모두 저항을 넘어 신중함을 훈련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주간에 맞추어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시 한 번 권장하려는 것이다.

성주간의 첫 네 밤을 예수님은 예루살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마리아와 마르다와 라자로의 집에서 보내셨다(마 21:17). 다른 사람들의 집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일은 우리 주님께는 다반사였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의 집에 머무셨다(마 8:1; 막 1:29). 예수님은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필립 얀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가신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그들과 함께 머물 것을 청했다" 그러자 주님은 이틀 동안 그곳에 머무셨으며(요 4:39-40),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바울이 루디아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을 때, 그녀는 바울의 말을 청종했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행 16:15).사울과 바리새인이 이방인 여자의 집에 머물렀을 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바울의 말대로 우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루디아와 그 형제들의 집을 방문했다(행 16:20). 훗날 바울은 에베소에서 장로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전하여"(행 20:20) 가르친다고 말했다.

기독교는 교회 건물 중심의 제도가 되기 전까지 수 세기 동안 가정 운동이었다.

오늘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의 교회가 어디 있는냐?"고 묻는다면, 아마 당신은 교회 주소를 알려 줄 것이다. 만일 1세기에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당신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민주주의나 금욕주의의 주소를 묻는 것과 같다.

기독 신앙은 교구도, 군대도, 체제도 아닌 운동이다(엡 6:10-18). 이러한 군사들은 무릎을 꿇고 행진한다.

예수님은 성 수요일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영적 준비를 하시며 홀로 계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힘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다메섹으로 가는 다소 사람 사울을 만나신 후,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 "예수께서 나를 보내시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 9:17)고 말했다. 사울은 치유되었고(v. 18)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v. 20).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v. 22).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사실 외에 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울은 다른 신자들을 만나거나 기독교 교리 교육(갈 1:16-17)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 영적 진리를 선포하면서, 성령과 함께하기 위해 성령에게서 힘을 얻었다.

만일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당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당신이 성령께 자신을 이끌어 달라고 청하면 성령께서는 그리 하실 것이다(엡 5:18).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영적인 거리 두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 수요일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 없다.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이 하신 은혜로운 일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우리를 대신해서 겪으신 조롱과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감사하라. 오들도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알라.

이제 예수님께 당신을 향한 사랑을 보여달라고 청하라.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분의 현존을 느끼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은혜를 경험하라.

오늘 성 수요일에 구세주와 함께한다면, 우리는 어제와 절대로 같지 않을 것이다.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코로나19 특별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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