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25-31:16

얼마 전에 만난 이민 간 친형이 나이 들면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민 간 곳에서 성공하고 그 사회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도 나이 들면 고향을 그리고 고향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은 동물의 귀소본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생명이 시작된 자리로 돌아가서 과거와 화해하고 창조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인간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은 20년이나 하란 땅에서 살았지만, 그곳을 고향으로 여길 수 없었습니다.

사실 고향인 가나안 땅에는 그를 반겨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형제이며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에서와 화해하고 하나님의 계약 백성의 우두머리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에서와의 갈등은 야곱이 충만한 삶, 축복의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과제였습니다. 그것은 에서와의 화해일 뿐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동시에 자신의 영혼에도 상처를 입혔습니다. 따라서 과거와의 화해 없이 야곱의 미래는 창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자 야곱은 귀향을 구체적으로 생각합니다. 야곱에겐 요셉 이전에 무려 열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지만, 라헬이 요셉을 낳자 비로소 귀향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인색하고 인정머리 없는 장인이 재산을 떼어줄 리 없었습니다. 장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야곱은 재산 모을 궁리를 합니다. 그리고 장인에게 아무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5-26).

라반은 야곱같이 훌륭한 일꾼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곱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v. 27). 라반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엘로힘' 대신에 '여호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 덕분에 부자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야곱을 붙들어 두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그러면서 라반이 제안합니다.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v. 28).

야곱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은 채, 야곱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는 라반의 말이 사실임을 강조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v. 30)

야곱은 라반이 얼마나 교활하고 탐욕스런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기선을 제압한 다음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양들은 하얗고 염소들은 검습니다. 야곱의 제안은 비정상적입니다. 야곱의 말대로 한다면 야곱은 뼈 빠지게 일하고 한 푼도 챙기지 못할 수 있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이런 제안을 한 것일까요?

라반은 재산을 줄 마음이 없습니다. 재산을 주지 말아야 훌륭한 일꾼 야곱을 붙들어 둘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있는 야곱이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그 모든 상황을 아는 야곱이 떠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야곱이 제안하는 그런 양들이나 염소가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라반은 흔쾌히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야곱의 제안을 윤리적으로 불의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야곱이 꼼수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바로 자기 아들들을 불러서 야곱이 치는 가축들 가운데 검은 양과 얼룩진 점이 있는 염소를 모두 빼돌리라고 명합니다. 양과 염소에게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들이 나지 않도록 원천봉쇄를 한 것입니다. "그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35-36).

야곱은 양들에게 흰 줄무늬가 난 가지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일종의 세뇌 교육을 합니다. 튼튼하고 실한 양들이 물을 먹는 구유 밑바닥과 교미하는 자리에 줄무늬 가지를 깔아놓았습니다. 그렇게 종자가 튼튼한 양 새끼만 얼룩무늬 양으로 태어나게 하였으며 마침내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v. 43).

현대 과학으로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야곱을 부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야곱은 부자가 되었다고 즉시 고향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출발 시기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야곱이 부를 획득하자,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야곱을 중상모략합니다. 양털 깎는 자리에도 야곱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양털 깎는 일은 한 해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친인척들이 모두 모여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주일까지 함께하는 공동체적 행사였습니다. 그런 행사에 야곱과 그의 아내들은 초대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떠날 것을 명하십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v.13).

야곱은 두 아내를 들판으로 불러내어 고향 갈 계획을 들려주고 동의를 구합니다. 야곱은 두 아내에게 라반이 그를 어떻게 착취했는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슨 지시를 내리셨는지 등을 길게 이야기합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v. 14-16).

야곱의 걱정과 달리 두 아내는 야곱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 주도권을 라헬이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헬의 이름이 레아보다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대답하여 가로되"라는 동사가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헬이 혼자 말한 것입니다. 라헬이 입을 열어 말하고 레아가 침묵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여기서 라헬과 레아는 '우리'라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협력관계의 새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영적인 귀향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우리도 야곱처럼 "심히 풍부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부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서 얻을 영적인 부일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천국 본향을 바라보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은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순례길의 한 장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영적인 부를 이루어 고향을 향해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에 힘이 실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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