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신앙인으로 자신은 아주 잘 믿고 있으며 남을 가르쳐야 할 입장에 있다고 말하는 어떤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나름대로 잘 믿고 선한 일도 잘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전도자를 만나라고 해서 별로 달갑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이 이곳에 와서 사역을 하고 있으니 식사를 좀 대접해 드리라고 부탁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함께 식사한 후에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들과 친정 어머니까지도 자신이 믿음이 적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만큼도 살지 못하면서 집안을 억망으로 만들어 놓고 교회만 가서 기도만 하면 믿음이 많은 사람이냐고 반박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문제를 놓고 울고불고 소리치며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또 안 믿는 자들에게 예수 믿어야 한다고 극성을 떨기보다는 기다려 주면 되는데, 모두들 인내심들이 없다고 하며, 자신의 남편도 불신자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언제든 교회에 나갈 것인데 왜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느냐며 오히려 책망을 하는 것였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것에 대해서 왜 간섭을 하느냐며 그들은 그 나름대로 구원을 위해 열심히 믿고 있는데 왜 기독교를 고집하느냐고 열을 올렸습니다.

그 집사님은 복음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나서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며 내가 그동안 주워들은 것이 얼마인데 그것도 모를 것 같으냐며 비아냥거리듯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속 시원하게 해주고 싶지만, 자신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는 것을 거짓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말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모든 것을 다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우겼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그것까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그냥 용서해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거였습니다.

주일에 두 아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자신은 피곤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차장에서 쉬고 있을 때도 많지만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답니다. 얼마나 어이없고 한심한지요. 스스로 복음을 만들어서 믿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있을 뿐,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도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의 속성이 만납니다. 십자가에서 사랑만 보아서는 안 되고,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지혜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만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를 통해 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잘못된 신앙관을 갖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르게 전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19).

성경에서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떤다고 했는데 그 집사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악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성결한 삶을 살게 해주는 기본적 바탕이 되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에 하나님을 만홀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로마서 6:15).

그 집사님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다 들어서 안다고 했지만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은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령님께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며 전했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셨음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사님에게 지식적 믿음과 현세적 믿음은 있을지 몰라도 구원을 얻는 참 믿음은 없다고 했더니 자신에게 왜 믿음이 없다고 하는지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남들을 가르쳐야 할 위치에 있는데 왜 믿음이 없다고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녀는 구원의 확신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모든 것을 용납해 주신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적당히 교회 생활을 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선한 일도 하기에 믿음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사단의 궤계에서 벗어나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여 구원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린도후서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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