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폭포수처럼 부어주십니다."

성령론 공부 다섯 번째인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성령이 일으키시는 회복의 역사를 함께 묵상합니다. 지난 번에는 성령께서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치유하시고, 상처를 치유하시는 회복의 역사를 묵상했습니다. 성령이 행하시는 또 다른 일은 말씀과 기도의 회복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회복

에스겔 37:4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회복되고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말씀과 기도가 깊어져야 하는데,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역사하실 때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손기철 장로는 『왕의 기도』라는 책에서, 성령에 대해 깨달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님이 임재하신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처음에 성령의 임재는 말씀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주여” 삼창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이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체험하면 할수록, 성령은 말씀이 선포될 때 오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10:4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장면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님께서 임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해서 깨우쳐 주십니다. 손기철 장로는 성령과의 교제가 깊어지면서 성령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이 “제발 성경공부 좀 해라!”였다고 합니다. 말씀과 함께 임하시는 성령은 말씀을 통해 신앙인들이 계속 자라나도록 권면하십니다. 

손 장로는 벽난로의 비유를 듭니다. 벽난로는 성경 말씀이고, 그 안에서 타오르는 불은 성령입니다. 만약에 벽난로만 있고 그 안에 불이 없다면, 아무리 멋진 벽난로일지라도 그 집은 따뜻하지 않습니다. 곧 말씀에만 관심이 있고 성령의 충만함이 없는 사람은 냉랭하고 차가운 벽난로와 같습니다. 반대로 불은 있는데 벽난로가 없으면 위험합니다. 불을 담을 틀이 없기 때문에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곧 벽난로인 말씀 없이 불이신 성령님만 쫓아가면, 기준과 절제가 없어 연약한 인간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영적 성장을 위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교제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말씀을 통해 성령과의 교제가 깊어지며, 성령을 통해 말씀이 깊어집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는 것 또한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입니다. 로마서 8:26은 성령과 기도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때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이름이 보혜사(중보자)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중보자 성령께서 우리를 깊은 기도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신약성서 학자 톰 라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려고 애쓰는 그 순간,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성령께서 가장 분명하게 일하시는 때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정돈된 언어가 아닌, 아직 언어가 될 수 없는 말, 곧 탄식을 발하신다. 그것은 기도 너머의 기도, 인간의 시각이나 지식이 닿을 수 없는 차갑고 어두운 심연으로 뛰어드는 기도이다.” (『신약의 모든 기도』) “기도 너머의 기도”는 참 멋진 표현입니다. 우리의 정돈된 언어를 넘어서는 기도 너머의 기도, 성령이 탄식으로 하는 기도, 우리의 지식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말씀이 깊어지고, 기도가 깊어집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재하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이 성령이 주시는 회복의 역사입니다.

사랑의 회복

마지막으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사랑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에스겔 37:1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성령이 우리 속에 있으면서 우리를 살아나게 합니다. 이는 성령이 마음 속에 역사하시면서 새로운 일을 일으키시는 것을 뜻합니다. 

에스겔 36:26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잠 4:23).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굳은 마음, 강퍅한 마음이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뀝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폭포수처럼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성령을 체험하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2019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백인 경찰관이 실수로 흑인 남자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백인 경찰관은 애인과 문자를 주고 받는 데 정신이 팔려 남의 집 아파트를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들어갑니다. 그 집의 주인인 흑인 남자가 거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침입자라고 생각한 백인 경찰관은 총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죽은 흑인의 동생인, 18살의 브랜트 진이라는 학생이 백인 경찰관을 용서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께 남은 삶을 바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백인 경찰관에게 다가가서 포옹합니다. 이 포옹 장면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용서의 포옹을 받는 순간, 백인 경찰관의 흐느낌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용서와 사랑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성령께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랑의 회복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일으키시는 회복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도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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