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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 이스라엘(창 32:22-32)"새로운 영적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의미의 삶을 살아가기를"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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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2  0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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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사십이 넘은 남자
한밤중에 일어나서
도시의 불빛을 쳐다보고는
인생이 왜 그리도 긴지 의아해하고
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생각한다.

고든 맥도날드의 책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에 수록된 에드 시스맨의 시 일부이다. 누구나 인생의 한고비에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삶의 여정과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며,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창세기 32:22-32에 나오는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얍복 강은 부족국가였던 시혼과 옥을 가로지르던 강으로 요단 강 동부 지류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야곱에게 얍복 강은 지형적 경계가 아니라 정신적, 영적 세계를 가로지르는 경계, 인간적 집착과 신앙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였다.

23-24절에 세 차례나 얍복 강을 건넌다는 표현이 있다. 신화나 역사에서 강을 건넌다는 것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 강을 건넌다는 것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로마 역사에서 줄리우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말이다. 야곱에게도 얍복 강을 건넌다는 것은 삶의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감을 상징한다. 과거를 상징하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얍복 강을 건넌 다음 야곱은 가족과 종들과 가축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뒤, 홀로 강가에 남는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 야곱은 어둠을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로젠불라트는 얍복 강둑에 기대어 있는 야곱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야곱은 피곤한 몸뚱이를 강둑에 기대었다. 40년을 이끌고 온 자기 몸을 땅바닥에 눕혔을 때 그 감촉은 스무 살 때 누웠던 땅바닥보다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 장작불이 어두운 하늘 아래 피어오르고 있었고, 밤의 적막을 깨는 소리는 희미한 개 울음소리뿐이었다. 달도 뜨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야곱의 영혼은 지나온 생의 여정을 더듬어 보면서 비틀거렸다. 형 에서와의 뿌리 깊은 다툼, 아버지 이삭의 포옹, 벧엘에서 꾼 사다리 꿈, 하란 땅 우물가에서 라헬과의 만남, 결혼식 다음날 신방에서의 불쾌했던 체험 등... 그는 깊은 의문에 잠겼다. 이제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고독의 자리에서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던 야곱은 갑작기 나타난 낯선 남자와 씨름을 벌이게 된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야곱은 그동안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발뒤꿈치를 잡는 자' 또는 '빼앗는 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목표물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지 쟁취했다. 그는 집념의 인간이었다. 영리한 머리, 강한 의지력, 굳어버린 양심으로 인해 그 무엇도 그가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야곱이 변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가 그를 항복시켜 자신의 한계와 무기력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싸움이 필요했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 씨름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씨름을 시작한 사람은 야곱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어떤 사람이었다. 어두운 밤 갑자기 나타나 야곱의 허리를 잡고 씨름을 시작한 것이다. 야곱은 이 싸움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 모습은 변화와 성장을 위한 내적 싸움이 어떤 구조인지를 보여 준다. 변화의 주도권은 어떤 사람,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하나님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사람이 하나님임을 야곱이 깨달은 때는 씨름이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하나님은 벧엘의 은총이나 하란의 혹독한 체험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야곱의 단단한 자아를 깨고자 싸움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야곱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해 야곱에게 도전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학자 푼케는 얍복 강에서 이루어진 야곱의 변화 사건을 이렇게 요약한다. "야곱이란 불안하게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불확실한 인생사에 대한 이름이며, 불확실하게 갈라져 있는 신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간은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인생사와 맞선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자신을 피해 달아나 버린다면 변화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삶과 분리된 자가 될 것이다. 야곱은 자기 생애, 자기의 정체성을 응시하며 자기 자신과 대결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길이다. 야곱은 자기의 성격, 인간 됨됨이, 자기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야곱은 대결을 피하지 않았기에 강해졌다. 자신을 응시하였기에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싸움은 승리나 패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귀중한 무엇, 즉 변화와 구원을 위한 싸움인 것이다.“

동이 틀 때쯤, 상대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부러뜨리자 야곱은 그가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자, 신적인 존재임을 알게 된다. 야곱은 그의 허리에 매달린 채 그가 축복해 주기 전에는 절대로 놓아줄 수 없다고 고집한다.

이때까지도 성경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천사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싸움이 다 끝나고 축복을 주는 자리에서다. 28절은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라고 말하고, 30절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라고 말한다. 야곱이 낯선 사람을 처음부터 하나님의 천사로 인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낯선 사람은 복합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남자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장자 상속권을 둘러싸고 씨름했으며 내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형 에서다. 그 남자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아버지 이삭이다. 그 남자는 야곱이 도외시하면서 억압했던 내면의 그림자들, 특히 어머니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 오랫동안 개발하기를 소홀히 했던 야곱 자신의 남성적 세계이다. 그 남자는 야곱이 에서가 내미는 복수의 칼날에 맞아 쓰러질 때 그를 맞이하러 올 죽음의 사신이다. 그 남자는 야곱이 정말로 움켜쥐고 의지해야 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구절은 낯선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야곱은 여러 존재들의 그림자와 씨름하는 동안 변화와 통합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이 하나님인 것을 언제나 깨닫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쉼 없이 때로는 어떤 형태로 때로는 어떤 힘으로 나타나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우리를 지치게 만들던 어떤 힘이 어느 순간 우리를 손안에 쥐고 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위협이기도 하고, 궁극적인 안식처이기도 하다."

광활한 대지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무렵 야곱과 낯선 사람 사이의 씨름의 승패가 결정된다. 야곱의 내적 여정은 해 지는 순간 시작하여 해 뜨는 시간에 끝난다. 야곱은 진리와 하나님을 상징하는 빛이 떠오르는 시간에 이스라엘로 거듭난다.

야곱처럼 우리도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주님이야말로 존재의 근거요, 삶의 지평이시기 때문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우리도 주님께 붙어 있어야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다.

오로지 매달리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야곱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렇게 물은 것이다. 이 질문은 20년 전에도 야곱이 받았던 질문이다. 그가 장자의 유업을 눈먼 아버지에게서 받아 내고자 했을 때 아버지 이삭이 던진 바로 그 질문이다(창 27:18). 그때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똑같은 질문을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받은 야곱은 정직하게 "야곱이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자신의 죄스러움에 대한 고백이다. ”저는 움켜쥐는 자, 빼앗는 자, 남을 속이는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천사는 야곱에게 축복을 준다. 그 내용은 재물이나 영예, 성공과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발꿈치를 움켜쥔 자'라는 의미의 야곱이 이제 '하나님과 싸워 이기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는 이름만의 변화가 아니라 인생 자체의 변화이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 곧 '정복자'가 되었다. 부족의 미래를 짊어질 지도자가 되어 새로운 언덕 위에 선 것이다.

얍복 강은 우리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삶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우리의 꿈 혹은 인간 됨됨이와 관련해서 하나님과 씨름할 때가 오는 것이다. 그때 우리도 야곱처럼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 어떤 변명이나 꾸밈없이, 잔머리를 굴리거나 외면함 없이 우리의 변화와 구원을 방해하는 문제들과 대면하고 씨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얍복 강가에서 벌어진 야곱의 씨름과 같다. 야곱과 같이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 새로운 영적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의미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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