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의 문학 칼럼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지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별명만큼이나 인류 모두가 조바심을 내고 코로나와 힘겹게 싸우는 동안에도 자연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기만 하다. 어느새 5월이니 말이다. 5월은 메이데이, 노동절의 날이요, 어린이의 날, 어버이의 날, 스승의 날이 있기도 하고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그것뿐인가? 5월은 별명도 많다. '눈으로 듣는 음악'의 계절,  '귀로 듣는 그림' 의 계절 등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답게 화려하기만 하다. 5월이 되면 햇빛에 빛나는 신록의 이파리들처럼 살아 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고귀한 생명력에 눈이 부시고 가슴마저 벅차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5월을 노래한 시도 많다. 독일의 괴테는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고 찬양했으며 영국의 워즈워드는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은 뛰노니’라고 노래했고, 노천명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5월을 사랑한 이가 있으니 영문학자 피천득 선생이다. 그는 5월에 태어나 5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5월을 사랑해 '오월', '창밖은 오월인데' 같은 산문과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호는 금아(琴兒)다. 춘원 이광수가 붙여준 호 '금아'(琴兒)는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처럼 그의 글들은 소소하고 작은 것 그리고 여린 것들을 맑고 곱게 그렸다.  

피천득은 5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시에서, ‘창 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구나/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이라며 공부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에게 연민을 보내기도 했다. 이는 마치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창밖에 찾아온 5월의 향내마저 잊은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도 모른 채 씨름하고 있는 우리들의 처지에 대한 연민으로도 들린다.

그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고 맞는 5월이기에 5월의 햇살은 더 빛나 보이고 4월의 어두움은 5월의 밝음에 의해 거두워지겠지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한 채 5월을 맞은 거다. 하지만 낙담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5월이 신록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그늘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어서다.

그렇다고 그늘이 언제나 어두운 것만은 아닌 것은 시인 김현승이 ‘5월의 그늘’에서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고 노래했듯 눈물 속에는 기쁨도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늘은 기뻤던 추억에 기대었던 것처럼 다가올 기쁨을 마음 속 가득히 채워주기도 한단 얘기다. 그것은 희망과 기대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회적 실패와 실의로 막바지에까지 몰리면서도 일견 ‘푸른 빛을 볼 수 있는 한 뼘의 마당에서나마 씨앗을 뿌리고 싶어했던 주인공 윌리.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그런 '한 뼘의 마당'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를 가릴 것 없이 모두의 가슴속에 5월의 싱그런 푸른빛이 와 닿는 '한 뼘의 마당'말이다.  

부디 지금의 시련들이 `계절의 여왕' 앞에서 그저 무색해지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자리잡은 그런 마당에 다시 꿈과 희망이 찾아오는 햇빛이 깃들기를 굳게 믿는다. 모두 힘내자.  

수필가 소개: 김학천 수필가, 칼럼니스트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USC 치과대학, Lincoln 법대 등을 졸업, 2010년 한맥 문학지에 신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현재 북미주 한국 문학인들의 모임인 미주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다양한 인생 경험과 남다른 인문학적 지식을 시대적 상황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칼럼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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