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미국에 이민 오기 전, "이제는 네 이름도 빼야겠다. 시집갔으니 시댁 종교 따라 살아라." 하시며, 절에 올려놨던 내 이름을 내리시겠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엄마는 보살 소리를 들으며 몇십 년을 절에 다니셨지만 한 번도 당신의 종교를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되려 시집가면 시댁 종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집에 종교가 두 개면 집안이 시끄럽다며...

"할렐루야! 언니" 엄마가~ 하며 흐느끼는 막내 여동생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엄마가 왜?" 연로하신 부모님 얘기는 언제나 가슴부터 쓸어내리게 한다.

"엄마가 다 버리셨어! 염주도 버리고 천수경도 버리고... 여행용 작은 천수경, 염주까지도..."

엄마는 그렇게 지난 사월초파일에 몇십 년을 보살이 되어 믿어왔던 불교를 버리셨다. "이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너는(막내 여동생) 절대로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고, 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시끄러워진다."며, 엄마가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신 거다.

사시는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큰아들이 도와 주고 부모님께서 주머니를 털어 아파트를 새로 마련하셨고, 막내딸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시면서 엄마는 인생의 큰 선택을 하셔야 했다. 사실 사랑하는 손주며느리에게 생긴 아픔이 꼭 당신 탓인 것만 같아서, 이렇게라도 해서 손자를 위해 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으셨으리라. 그러나 우리 자매는 안다. 엄마의 마음을 이끄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걸...

30년 넘는 세월 동안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이름을 수없이 그분께 말씀드렸고, 큰 아픔을 겪으면서도 지금은 교회 권사님으로 섬기고 있는 막내동생의 울부짖는 기도가 있었음도 물론이다. 난 그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다. 전화에 대고 '엄마, 엄마" 하며 수없이 불러봐도 보고픈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생각할수록 엄마의 큰사랑, 참사랑, 위대한 사랑이 한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지면 과연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연탄 배달 받던 시절에는 종일 연탄 배달로 지친 아저씨를 불러 계란 한 개에 막걸리 한 잔이라도 드리며 몸을 잠시라도 쉬게 해주시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였기에, 우리 오남매는 그런 엄마의 행실을 저절로 따라하게 되었다. 어느 누군들 자신의 인생사에 책 한 권쯤 쓸 만한 얘깃거리가 없겠냐만은 엄마의 인생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엄마의 희노애락을 제일 많이 공유해서인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썩 좋지는 않았더랬다. 그러나 나도 이만큼 살아보니 이제야 철이 드는지, 엄마가 일부러 나만 고생시킨 게 아니라, 수많은 일들을 해내시느라 때론 어쩔 수 없이 한 놈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이해가 생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계시던 엄마는 이사하신다고 무리를 하셨는지 몸살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동생이 전해 주는 말에 의하면, 새벽에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서 들어보니, "하나님, 제가 일찍 하나님을 안 믿고 이제서야 믿어서 미안합니다. 그동안 다른 데 너무 오래 있다 이제야 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시며 회개기도를 하시더란다.

초신자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 경험으로 알기에, 엄마의 기도가 하나님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실까 생각하니 절로 감사 기도가 나온다. 

다만 한 가지, 엄마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본질이 세상과 부딪칠 때, 그것이 고난으로 나타날 때, 엄마가 갖게 될 두려움이 걱정되지만 엄마는 잘 이해하고 이겨나가시리라 믿는다.

엄마가 40여 년을 사셨던 아파트에서 엄마는 젊은 엄마들의 인생 멘토였다. 팔십 중반의 연세에도 생각은 젊은이들 못지 않게 진보적이셔서, 젊은 엄마들과 얘기가 잘 통했다. 삶의 경륜에서 나온 지혜로 젊은 엄마들에게 가정을 지키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조언해 주셨다. 불교 신자였지만, 엄마는 그리스도인 같은 면모를 삶으로 드러내셨다. 그런 엄마가 이제 정말 그리스도인이 되셨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성해지시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모범이 되신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는 과감하게 하나씩 정리해 나가신다. 일년에 열 번 넘는 제사를 한 번의 감사 예배로 바꾸셨다고 한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동생따라 교회 나가시겠다고 마음도 정리하고 계시는 중이란다.

엄마의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동생이 다니는 교회 성도님들의 헌신도 컸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마다(뇌졸중, 폐렴 등으로) 교회 분들이 일하는 동생을 대신해 조를 짜서 번갈아가며 엄마를 심방하고 집에 계신 아버지까지 잘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절에서는 보지 못한 그 모습이 엄마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그런저런 사정들을 미국에서 들으면서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 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주님이 눈을 열어 보여 주시면, 그 본 것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그리스도의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내고 있는 그들의 섬김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코로나가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그리스도의 향기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 이 멀리 미국 땅까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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