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6)

이번호부터 성령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호의 주제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세례와 물세례

청년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는 방언을 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무언가 성령의 강한 역사가 드러나고 있는지 묻는 것처럼 들렸고, 내게는 방언처럼 눈에 보이는 성령의 은사가 없었기에 스스로 부족한 신앙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성령에 대해 공부하면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내 생각이 올바르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흔히 “성령세례”를 물세례 다음에 경험하는 두 번째 세례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세례는 오직 하나입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입니다. 물세례 가운데 성령세례가 함께 임합니다. 물세례는 죄 용서와 구원의 은혜가 결정적으로 임하는 예식이고, 물세례 중에 성령이 함께 임하는 성령세례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38에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함께 받는다고 말합니다. 세례 때 성령이 함께 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구원과 칭의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고,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김하중 장로는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에서 자신의 세례 경험을 소개합니다. 이분은 베이징의 무역대표부에서 근무하던 중에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갑자기 귀국해야 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다닌 지 몇 달 안 되었지만, 귀국 소식을 들은 베이징 교회의 목사님이 세례를 받고 가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집으로 찾아와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 때 목사님이 머리에 물을 부으며 손을 대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몸 속으로 확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을 합니다. 그 순간 이분은 정신을 잃습니다. 이분은 그 순간 온몸으로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이 말하는 세례의 순간입니다. 세례 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세례가 함께 임합니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사도행전 8장에는 세례와 성령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중에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행 8:16).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이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을 받게 됩니다. 이 본문을 예로 들며 어떤 분들은 물세례와는 다른 성령세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을 자세히 보면,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물세례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례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 본문이 말하려는 것은 사마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의 강한 역사를 느끼지 못한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받았던 소위 성령세례는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 순간을 말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경험하는 순간을 성령세례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손기철 장로는 성령세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내 자신의 계획과 지혜로 살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 존재의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의지적으로 나의 자아를 성령님께 전부 내드리고 그분께 순종할 때부터 성령님이 나를 소유하고 통제하기 시작하십니다. 이런 만남 혹은 경험을 ‘성령세례’라고 하며, 그 상태로 사는 것을 ‘성령충만’한 삶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성령세례를 “성령충만이 시작된 첫 번째 경험”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모두 성령세례가 필요합니다. 즉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5: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씀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영향력입니다. 성령충만함을 술취함에 비교하는 것은 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처럼 성령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 성령충만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영향력 속에 있고, 성령이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로 시작된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성령충만의 유지
     
성령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이 성령충만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엡 5:19-21). 첫째,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라는 말씀처럼 구원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둘째,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는 말씀대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며”, 곧 감사가 성령충만의 표식입니다. 넷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대로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함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가 있고, 봉사가 있다면, 내가 성령충만 속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성령충만을 더욱 깊게 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성령충만의 표식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승현 교수는 『성령』이라는 책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방언 기도의 대부분은 바로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4:2은 방언의 특징을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강조합니다. 바로 십자가의 비밀, 복음의 비밀입니다. 

성령충만하게 역사하는 방법은 바로 이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선 하나님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 교회에 가서 찬양하면 성령님이 자신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방법은 바로 에베소서 5:19-21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봉사할 때, 성령충만은 유지되고 깊어집니다.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도행전 8장의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사마리아에서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자,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에게 그런 능력을 달라고 조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2). 성령충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은 죄와 함께 있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리고“주께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론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령에 대해 공부하는 목적은 성령충만하여 성령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소개한 회개, 구원의 고백, 찬양, 감사, 봉사, 기도를 통해 성령충만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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