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런은 정말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에 탄 경찰차, ABC 동영상 캡처

6월 21일, 펜실베이니아 주 유니온터운에서, 충돌로 찌그러지고 불길이 내부로 번져 들던 경찰차에서 데일런 맥리(31세)는 경찰관을 끌어내 생명을 구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경찰과 지역사회 간에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맥리는 인종차별 종식이나 경찰 개혁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일에 관한 거대한 질문을 모두에게 던졌다.

맥리는 인명을 구하는 결정은 복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친구들까지 망설임이 전혀 없었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모든 생명은 가치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누군가가 불에 타는 모습을 방관만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사람들 혹은 경찰관이 내게 무슨 일을 했든지에 상관없이, 이 남자는 안전하게 집과 가족에게 돌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관들은 제이 핸리 경찰관의 목숨을 맥리가 구했다고 보증했다. “데일런은 정말 '나는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토마스 콜렌식 경찰관이 기자들에게 전했다.

데일런을 용감하고 특히 이례적인 인물로 만든 건, 그가 과거에 불의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다. 맥리는 흑인이며, 2016년 3월에 발생한 술집 밖에서의 싸움 때문에 1년 간 감옥에서 보냈다. 1년 동안 그는 자녀들과 떨어져야 했고 아팠던 그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맥리의 여동생이 술을 마셨고 밖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면서 운전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맥리는 던바에 있는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주차장에 도착해 총을 든 남자에게서 총을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 그때 최소 한 명의 경찰관이 맥리에게 총을 쏘았고 맥리는 도망쳤다. 경찰관은 맥리가 자신에게 두 번 총을 겨누었다고 증언했지만, 보안 카메라는 맥리가 남자의 총을 빼앗아 재빨리 버리고 총격 이후에 도망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러나 흑인이며 목과 팔에 문신을 한 맥리는 판사의 카메라 판독에 따라 1년 징역형을 받았다.

몇 달 전에는 평상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총을 들고 다가올 때 달아났다는 이유로 경찰관과 갈등을 겪었다. 맥리는 그들이 경찰관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경찰관이라고 말했을 때 멈춰서서 손을 머리 뒤에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는 도주와 체포 방해 혐의를 받았고 체포 도중 경찰관에게 얼굴을 맞았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물리력 사용은 보안 카메라에 기록되었으므로, 혐의에 맞서 싸운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핸리의 생명을 구한 뒤 맥리는 일부 경찰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모든 경찰관을 비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인성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 이 세상의 중요한 문제“라면서 맥리는 ”나는 영웅이라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정직한 개인으로 알려지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데일런 맥리, ABC 동영상 캡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의 능력과 업적에 있다는 것이 통념이다. 인종차별이 잘못인 이유 증 하나는 인종적 소수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는 정당한 기회를 그들에게서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그것이고, 얼마나 어떻게 버는가이고, 어떻게 보이는가이고, 소유한 그것이고, 어디에 사는가이고, 누구를 알고 있는가이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누구든 성공을 쟁취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 규정한 것을 이루기 위해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 규정하는 방식은 절대적으로 그르다.

우리는 태어날 권리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능력은 창조주에 의해 부모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고 은사는 성령에 의해 주어졌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창조하지 않았지만 내가 발전시킨 능력들과 함께한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개인의 가치는 우리의 능력이나 환경 안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 사실이 바로 좋은 소식이다.

예레미야 14장에서 예언자는 죄 많은 백성을 위해 기도한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v. 7a). 그는 용서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비와 은혜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 없고 그러한 자비를 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 의거해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생각한다. 사실인즉,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다(롬 5:8)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다시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요일 4:8).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 프레드릭 비크너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은 사람들이어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도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코로나19와 경제 문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인종이나 경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과거의 죄나 미래의 실패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제 우리 차례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안다. 예수님은 그의 도움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청하고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믿음으로 행동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그 즉시 한 영혼을 변화시킬 것이다.

(* 편집자 주 - 폭스 뉴스 22일자 기사와 무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6월 22일 칼럼을 발췌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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