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루터교회 조그만 교실을 임대해서 유니온교회 개척 깃발을 올렸다. 사람이 몇 안 되니까 그것도 넉넉했다. 그런데 교회가 자라면서 자체 성전을 마련해야 했다. 출석교인 50명은 개척목사에게 대단한 숫자였다. 그래서 자체성전 마련을 위한 기도 요청을 시작했다. 반응은 시큰둥했고, 슬금슬금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때에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쓴 기도문들을 받았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예수님, 예수님, 우리들에게 예쁜 교회당 하나 지어 주세요. 예수님은 목수이셨잖아요.” 목수를 카펜터(carpenter)라고 영어로 썼는데 그걸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장년예배시간에 울먹이며 이 편지를 읽은 뒤 온 성도들이 부르짖어 기도했다. 성전 마련의 불이 활활 타올랐고 마침내 몇 해 지나서 ‘우리 교회당’을 마련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개척교회가 첫 번 마련한 자체 성전이었다. 물론 조그만 방에 어린이 도서실을 마련했다.

교회가 무럭무럭 자라서 더 큰 교회당을 마련해야 했다. 성도 일부가 4.29 폭동의 피해를 엄청나게 입었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한 교외도시로 옮겼다. 5천 평 대지 위에 1천 명까지 예배드릴 수 있는 넉넉한 성전이었다. “넓은 성전 마련하여 자손만대 축북받자.”는 구호를 외치고, 울부짖어 기도하고, 금식한 음식값까지 건축헌금으로 보탰다. 한국계 은행이 선뜻 융자를 해주었다. 물론 교육센터의 널찍한 방을 도서관으로 지정했다.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히고, 책 읽는 성도가 되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책을 직접 기증했고, 책값을 헌금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유니온도서관’이 되었다.

종교학 학자들에게는 상식적인 금언이 있다: “책이 있는 종교는 오래 오래 살아남지만 책이 없는 종교는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된다.” 중동 지역의 조로아스터교와 한국의 샤머니즘 곧 무당종교가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유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세월이 흐를수록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책 곧 경전이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똑같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 책을 모으고 읽는 일에는 병적일 만큼 열심이었다. ‘남자라면 무릇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금언이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가난해도 책을 열심히 사서 모았다. 대학교수가 되었을 때에는 일만 권쯤 되었다.

이제 그 책들을 처리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설립총장으로 헌신했던 미성대학교에 대부분을 기증했다. “아유, 목사님 무슨 책이 저렇게도 많으세요? 목사님들은 성경 한 권만 읽으시는 줄 알았는데요.” 책을 떠나보내면서 어떤 권사님의 말이 되살아난다. 좋은 뜻으로 했던 말씀이지만 나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 신학생에게, “뭐 책이 어디 여러 권인가. 그 책(the Book) 한 권만 읽으면 되지.” 어떤 유명한 신학교수는 성경책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는데... 세상의 모든 책을 성경 한 권 풀어내는 일에 양약이 된다는 뜻으로 보면 어떨까.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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