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 주 샤이엔이란 조그만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초청해 주셔서 갔는데. 그곳은 덴버보다 1,000피트가 더 높은 지대여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나선 몸이기에 힘들어도 견디며 영혼 구원을 위해 달려가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찬송 부르는 우리 부부의 눈에서는 감사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함께해 주시며 복음의 능력 안에서 사용해 주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사랑이 물밀 듯이 밀려 왔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겸손이 우리 부부에겐 오히려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증을 하는데 갈급한 심령에 단비가 내리듯이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만지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셔서 회개가 터지며 많이들 울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서도 깊게 역사해 주셔서 성도들이 남은 생애를 허송세월하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동그랗게 원을 지어서 뜨거운 고백의 기도를 했습니다.

한 성도라도 도전 받고 전도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소원이며 힘이 되기에 또 다시 다음 사역지를 향해 가는 원동력이 되어 영혼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이사야 43:7).

아이다호를 향해 가는 80번 프리웨이는 바람이 많이 부는 길이라서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듣고 초행이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바람이 갑자기 불어와서 RV가 좌우로 흔들려 위험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속도를 줄여서 달렸습니다. 길 양옆에는 푸른 초장이 펼쳐져 있는데 그냥 버려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산도 아닌데 점점 지대가 높아져 계기를 보니 7,800피트가 넘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집을 짓고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6월인데도 눈이 많이 보이고 얕은 산등성이에는 소와 양 그리고 사슴을 방목하여 키우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습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길 옆 언덕에 나무를 길게 짜서 바람을 막도록 즐비하게 세워 놓은 곳이 많았습니다.

달리다가 보니 짐을 운반하는 큰 트럭이 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쓰러져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RV가 우리 차를 앞질러 쏜살같이 달리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쯤 가다 보니 그 RV가 쓰러져 박살이 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RV 운전자는 바람이 세게 분다는 경고를 받지 못하여 그냥 막 달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조심 운전을 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심해서 한참 가는데 달리는 길과 평행으로 철로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차도 중간 쯤 다섯 칸이 철로를 벗어나 쓰러져 있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를 쓰러져 있는 차들이 증명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이사야 43:2-3).

새벽에 샤이엔을 떠나, 위험한 지역을 통과하면서 거북이같이 달리고 잠깐씩 쉬면서 아이다호 주의 포카텔로라는 도시에 15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밤 9시가 되었는데 하늘이 훤하고 어둡지가 않은 것은 위도가 북쪽이어서 그런지 다른 지역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운전대를 붙잡아 주셔서 남편이 장거리 운전을 잘하도록 도와 주시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도 피곤하지 않도록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0-31).

광야에서 외치며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과 같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행복하기에 달려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신 일들의 증인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영에 속한 사람인지 분별하는 것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에 따라 곧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명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아는 것이 신앙으로 사는 길이며 승리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것이 우리가 달려가야 할 길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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