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호 목사

나는 대구 외곽 ‘김해 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유교의 가치관을 따라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외국인 선교사 한 분이 동네 어귀에서 소형 스피커를 연결해 마이크를 잡고 부른 찬송가 252장(통184)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를 처음 듣게 되었다. 예수가 누군지 몰랐던 나는 예수의 피 역시 알아듣지 못했다. 훗날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 ‘예수의 피 밖에 없네’를 따라 부를 때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에 다니게 된 후 특별히 큰 은혜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교회가 좋아졌다. 뭔지 모르게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러면서 유교와 불교 문화가 서서히 싫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고졸검정고시를 치렀다. 친구들보다 빠르게 고교 과정을 마친 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했다. 당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졌다. 그러던 중 영양결핍으로 결핵성 늑막염에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결핵이 폐까지 전이되어 늑막염과 폐결핵으로 7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맞닥뜨렸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사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강한 목마름이었다. 몸도 아프고 앞길도 막힌 상황에서,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를 다시 들었다. ‘죄와 예수의 피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씨름하다가,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게 되었다. 

오랜 고뇌의 시간이 지나고, 1977년 4월 10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새벽연합예배에서 나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나의 구원자이시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며 인격적으로 주를 영접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대학교에 들어가, 교우들과 ‘제자의 삶’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며 책임 있는 종의 삶을 살자고 다짐했던 그 시절에 간절히 부른 찬송은 460장(통515)이었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젊은 시절에 나 자신을 향해, 교회 공동체를 향해, 세상을 향해 정의를 외쳤던 그 찬송을 지금도 마음에 담아두고 부르고 있다. 주저앉거나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이 찬송가를 읊조리며 마음을 바로잡는다. 

독일에서 힘든 유학 시절을 지냈을 때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은 214장(통349), “나 주의 도움 받고자”이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라는 후렴을 반복해 부르며, 내 존재 자체를 주님께 위탁하는 고백을 드리곤 했다. 주님이 받아 주시고 역사하시지 않으면 헤쳐 나갈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라고 외치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곤 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은 나를 보혈로 살려 주시고, 종으로 불러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그분의 사랑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졌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은혜가 이 찬송에 담겨 있다. 사역하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를 찬양하며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신학과 목회를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사로잡는 찬송은 역시 보혈의 찬송이다.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처음 들었던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는 평안을 주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준다. 피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구약의 제사는 대부분 피를 바치기 위한 제사였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낌없이 피를 흘리셨다. 그 피를 찬양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내 삶에 자유가 넘쳐난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이 당면한 문제들, 인종차별과 동성애, 맘몬이즘, 환경파괴 등 인간의 이성으로는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들도 예수님의 은혜와 지혜로 능히 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찬양한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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