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지루한 시간은 멈춘 듯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손님 두 명이 다녀간 게 전부였다. 마음도 멈춘 듯한 시간만큼 무거웠다. 맨손 체조를 해봤지만 찌뿌둥한 몸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다. 뉴스를 보아도, 책을 읽어도 흥미롭지 않았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앉히고 생각 없이 눈을 감았다. 순간, 카톡 신호음이 울렸다. 무료함에 빠진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입가엔 웃음이 피어났고, 살짝 긴장까지 하고 전화기를 열어봤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분이었다.

‘축하해 주세요. 할머니가 되었어요. 어제 며느리가 분만했어요! 건강한 사내아이네요!!!!’

처져 있던 내 몸이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분의 기쁨이 곧바로 내 안에 들어와 버렸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져 있었던 내 시간에 생기가 찾아온 것이다. 손주를 애타게 기다린 그분들의 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장성하여 짝을 만나고, 결혼하는 것은 부모라면 모두 원하는 일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가정을 향하여 예비하신 복을 누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복을 누리기 위하여 어려움도 극복해 가며, 땀 흘리고,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훌륭하고 멋지다. 자녀들의 귀한 삶을 보며 늙어가는 기쁨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분의 아드님도 몇 년 전에 결혼하고 아이를 기다렸으니 그 기쁨은 더 클 것이다. 고맙게도 내게까지 그 기쁨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소식을 받은 그때부터 생글거리고 있었다. 세탁물을 들고 들어온 손님이 평소보다 밝은 내 얼굴을 보고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길게 대답했다. 어둠의 시기에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았노라고! 탄성을 지르고 세상에 태어난 그 아기! 귀하고 귀한 손주를 안고 할머니가 지르는 행복한 탄성을 들었다고. 그것은 승리의 함성이었다고! 아무리 세상이 벌벌 떠는 코로나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고! 강하신 하나님을 다시 경험했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고!. 손님도 손뼉을 쳐주었다.

일이 끝났다. 마침 차에 개스를 넣어야 했다. 집과 일터만 오가는 단조로운 운전 코스를 오랜만에 이탈하여 주유소로 달렸다.

전에 보던 풍경과는 다르게 개스를 넣으려고 서있는 차가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산한 곳은 세탁소만이 아니었다. 차들이 몰려 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어둠 안에 있는 세상, 부끄럽게도 두려움을 느꼈다. 조금 전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승리라고 기뻐하던 마음이 밀려나 버렸다. 잠시 멈추어 섰다. 그곳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잊은, 신실하지 못한 마음을 회개했다.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발길을 옮기는 내 눈으로 들어온 풍경! 불안한 마음을 닦아주려는 듯 비스듬한 언덕을 가득 채우고 합창같이 피어난 선홍색의 작은 장미 꽃봉오리들!!!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내 입에서 나온 큰 소리를 내가 듣고 있었다.

“꽃들아! 꽃들아! 너희는 코로나바이러스 괜찮아?” 꽃들은 그저 환하게 웃음만 보내고 있었다.

또 보고 말았다. 막을 수 없는 생명력! 하나님의 손길은 거기에도 있었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며, 하나님께서 마음에 속삭여 주셨다. 내가 여기 있노라. 바로 너랑 같이 있노라고.

싸~~~아 불어오는 바람에 물결치듯 꽃들이 흔들렸다. 더 큰 합창이다. 차 안으로 개스 들어가는 소리가 꽃들의 합창에 리듬을 선사했다.

하나님! 흔들리기만 하는 못난 믿음을 회개합니다. 이 작은 손의 박수와 작은 입의 찬양을 받으소서. 받으소서. 가만가만 말하는 내 얼굴에는 더 큰 미소가 번졌다.  

문제 없어! 생명은 태어나고! 꽃들도 피어나고! 아무리 어두워도 또한 지나갈 거야!

도타운 햇빛을 대동한 푸르고 눈부신 하늘 아래서 꽃도 웃고, 나도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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