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카드 놀이를 했습니다.  내게 카드는 도박과 동의어였고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기에, 놀이는 물론 카드와 관련된 영화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와 있는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오락을 찾다가 첫째 녀석이 제안했습니다. 카드의 그림도 구별 못하고 놀이의 룰도 몰랐지만 가장 쉬운 걸로 하면 된다는 말에 얼떨결에 시작했습니다. 이 부정한 것을 만져도 되나 하는 마음과 함께 말입니다. 카드로 할 수 있는 놀이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도박과는 거리가 먼 게임들이었습니다. 보드 게임이나 젠가 게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배우고, 실수하고, 웃고, 긴장하면서 한 시간여를 보냈습니다. 게임이 끝난 뒤, 아들과 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들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아빠 너무 잘하는데요.”

식탁 앞에서도, 설교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때 아이들과 했어야 할 게임을 이제서야 대학생 아이들과 했구나. 이처럼 자유롭고 편안하고 마음 통하는 시간을 왜 그동안 갖지 못했을까?’ 물론 가족들과 시간을 전혀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제안했고, 주도했고,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몇일 전 산책하는 중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감사해요”. “왜?” “가족(아빠)과 너무 좋은 시간을 갖게 되어서요.” 요즘 저는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아픔과 고난에 대한 공감대나 위기의식이 없어서 이런 나눔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가정도 힘들고 아이들도 불안해 합니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멈추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자, 했어야만 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30대와 40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저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열심 속에는 성공에 대한 욕구, 평가에 대한 두려움, 업적에 대한 강박관념 등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위 거룩한 사역이라는 목회직을 수행하면서도 그런 내면의 문제가 내 안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속이기도 하고 스스로 속으면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나를 멋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르시시즘과 이기적인 성속의 개념 그리고 자기애에서 비롯된 새로운 공로주의는 그럴 듯해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나는 옳고 거룩하고 필요하고 유익한 사람이다.”

동시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와 실망이라는 열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주요 대상은 가족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자 사람이 보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제일 먼저 보인 사람은 ‘나’였습니다. 나를 제대로 보게 되니 남들이 보는 나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몰랐던 함몰 웅덩이도 보였고, 내 것이 아닌 것도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할 일이 없다보니 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고 힘 주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힘이 빠지니 주변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격의없이 말을 걸어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여러분이 알고 계시다면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겠지요?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외적인 힘이 빠지니 내면이 강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둘 다 빠지는 분들도 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충만함, 자족, 평화, 기쁨을 맛보게 되니 영적으로 실수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조바심도, 불필요한 긴장감도 없이 지내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요란한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한 사건들을 우리는 자주 접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타인들의 시선과 요구, 책임의 무게가 큰 공인들의 삶과 내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내면의 자아가 참된 만족과 평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진정 홀로 있을 수 없다면, 질그릇 같은 인간은 언제나 일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가미를 씌워 중독과 파멸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일과 업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와 관계에 집중하는 쿼런틴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곽성환 목사는 매일 아침 큐티 방송 <일일Ten>을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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