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나의 사역 (2)

CMM 회원과 KCJ 정기구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 체험 수기 공모전’에 앞서, KCJ는 로고스선교회 내에서 사내공모전을 주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두 달여 재택근무를 해야 했고,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등 근무와 일상을 제한하는 지침들로 심신이 조금씩 고달파진 이때,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각자의 신앙과 사역을 돌아보자는 취지였다.(편집자 주)

나에게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향한 수식어들이 많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반전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편안하고 문제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고난과 환난과 연단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나는 십수 년 전에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아침에 뜨는 해가 달라 보였고, 하늘이 달라 보였고, 새소리가 하나님을 향한 노래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때로는 내 등을 두드려 주시고, 때로는 사랑의 매도 아끼지 않으시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아버지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났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다 없어지지는 않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과 환난과 연단이 내게도 찾아왔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고, 나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내 생각대로 살고 있는지, 나에게 얼마나 사랑이 부족한지, 하나님 말씀과 내 생활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내가 얼마나 낮아지지 못하는지 등등. 내가 가장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해지신다는 말씀을, 어리석은 나는 어렵게 배워야만 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가장 큰 고난에 관한 이야기는 욥기이다.  글로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욥이 겪은 고난을 내가 실제로 겪는다고 상상하면 제발 그런 일만은 나를 피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욥이 겪었던 고난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외면하고 싶었을 만큼의 엄청난 고난이었다.  그러나 욥이 겪은 모든 고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이었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일부분이었고, 결국에는 전보다 더 많은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 반전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은 욥의 ‘고난 중 믿음’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1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해서 중국 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에만 해도 먼 얘기 같았고, 솔직히 중국이 기독교를 배척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시나? 하는 생각을 혼자 했더랬다.  

1월이 다 가고 2월에 접어들면서 바이러스가 점점 다른 나라들로 퍼지고, 전 세계 사망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드디어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땅에까지 오고, 2월이 지나 3월에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전염병 뉴스에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사태를 주시하게 되었다.  그제야 먼 나라 얘기만 같았던 죽음의 바이러스가 내 코 앞까지 다가온 느낌이었다.  

마침 그즈음에 이사야를 읽고 있었고, 성경에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나님의 진노, 심판, 전염병, 기근 등의 성경 구절들과 맞물려서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힘든 시간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시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또 하나의 반전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희망하고, 또 바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 중에 성경 구매가 늘었다는 기사를 여기저기서 접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스타그램  세대를 위해 성경책을 판매하는 소기업인 Alabaster Co.는 작년에 비해 143% 성경 구매가 증가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또한 미국 전역의 기독교 단체들과 목사님들이 미국을 위해 기도하기를 요청하고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로고스선교회에서도 박도원 목사님의 지시 하에 근무 시간 중 5분 동안 시편 91편을 두고 사역자들과 회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기도함과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온라인으로밖에 들을 수 없는 주일 설교도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전도의 도구가 되었다.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살면서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도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이웃 중 네 가정에게 3월 중순부터 온라인 설교 링크를 보내 주기 시작했다.  주일마다 11시 15분에 링크를 이웃들에게 메시지로 보내 주었고, 항상 고맙다는 답이 왔다. 설교가 끝나면 잘 들었다는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전해 왔다.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를 방문하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온라인으로 듣는 설교는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고, 그 말씀 가운데 성령의 힘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했다.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었던 시간 중에서  너무나 보잘것없이 작은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감사한다.

욥과 세 친구

우리 인간은 어리석기에, 환난 중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의 시간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 편안하고 싶고, 부유하고 싶고,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획은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고난과 환난의 시간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시간 없이는 아무도 스스로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2:2-4).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환난의 시간을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환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분명 달라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환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일부분이고, 그 시간을 통해 더욱 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다듬어질 수 있는 반전의 기회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내가 왜 너에게 이런 환난을 허락했는지” 끝까지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창조자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시며 피조물을 꾸짖으셨다. 아멘! 아멘! 아멘!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이사야 45:7).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