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00장(통)은 내 생을 마치는 날까지 추구해야 할 가장 거룩한 질문"

30여 년 전, 서울에서 신학교를 막 졸업하고 충북 제천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로 첫 목회를 나갔습니다. 나름 기대와 사명을 갖고 찾아간 농촌 목회였지만, 시골생활에 적응하며 목회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얼마 못 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영적으로 지쳐가던 차에, 제천지방회에서 개최한 연합산상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강사는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말씀을 열정적으로 증거했고, 집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진지해졌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열중하던 강사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지 찬송가 200장(통)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을 함께 부르자고 했습니다. 찬송이 시작되자 앞에서 반주로 트럼펫을 부는 형제가 어찌나 땀을 흘리며 정성껏 연주를 하던지 거기서 먼저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부르면서 가사를 묵상하는 동안 예수님의 피가 내 가슴을 적시는 것 같았습니다.  3절을 부르기 시작하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첫 소절에서 갑자기 머리와 가슴을 헤머로 때리는 듯한 전율이 찾아왔습니다. “주 예수를 깊이 아는 놀라운 그 은혜 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롭도다~”  
갑자기 “주 예수를 깊이 아는” 부분에서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며,  “너는 얼마나 예수님을 깊이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내면에서 천둥처럼 들려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성령 체험도하고, 교회 안팎에서 크리스천 학생 리더로, 교사로, 성가대로 성실히 봉사해왔습니다. 주님께 좀 더 헌신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졸업 후 일선 목회자로서 사역을 시작한 터라, 나름 주님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찬송가 가사가 가슴에 부딪쳐 오면서 너무도 초라하고, 무지한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한한 존재로 생을 살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실수투성이가 어찌 초월적인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안다고 쉽게 말 할 수 있었는가?  예수님처럼 온전히 낮아지거나, 고통을 당해 본 적 없으면서, 그분의 겸손과 사랑을 이해한다고 거룩한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었는가?  그분의 심장, 그분의 아픔, 그분의 눈물, 그분의 웃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 못하면서, 어찌 그리 예수님의 삶을 잘 말할 수 있었는가? 등등.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 가슴에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맞추어 강사님이 3절을 반복해 불러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전엔 찬송가를 부르며 뜨겁고 진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는 내내 같은 질문이 반복되어 몰려왔습니다. “너는 주 예수를 깊이 아는가?”  

찬송과 말씀이 끝나고 합심으로 기도할 때,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예수를 아는 척했던 교만에 대해, 섣부르게 이해한 복음을 너무 쉽게 전했던 어리석음에 대해 자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날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떠올랐고, 그의 책 『나를 따르라』에 기록된“값싼 은혜”와“값비싼 은혜”에 대한 논지가 연결되었습니다. 신학생 때에는 학문의 맛으로 읽었던 글이지만, 그날은 실존적으로 내 삶을 훑으며 큰 스승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값싼 은혜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지불한 값비싼 은혜로 된 것이기에, 그 은혜를 깨달은 자는 언제나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담론이 연결되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며, “주 예수를 깊이 아는 놀라운 그 은혜” 라는  찬송은 내 목회철학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존재와 은혜의 깊이가 한없는 예수님이시기에,  끊임없는 배움의 자리, 묵상과 기도의 자리, 그리고 순종의 자리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어지는 가사“놀라운 그 은혜 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롭도다”는 주 예수를 깊이 알아갈 때 새롭게 누릴 수 있는 영적 환희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날마다 주님을 향한 구도자로서의 삶을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주 예수를 깊이 아는 놀라운 그 은혜” 라는 찬송은 내 생을 마치는 날까지 추구해야 할 가장 거룩한 질문이요, 의미있는 도전이요, 기쁨으로 풀어갈 숙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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