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터임을 근래에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더욱 실감하고 있다. 크게는 세계적인 사건들부터 작게는 개개인들이 겪는 문제들까지, 불쑥불쑥 나타나는 악한 세력들로 인해 처참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런데 더욱 처참한 것은 악과 선의 대결에서 선이 이기는 경우보다는 악의 세력이 득세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정계만 보더라도, 정의와 진실보다 위장과 허위 그리고 거짓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고, 북한처럼 권력을 쥔 포악한 정권은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여, 마치 살찐 먹이감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보더라도,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자가 이기는 것 같고 힘있는 자들만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악에 맞서 대항해 본들 시원스럽게 이기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욥기를 보면, 의롭고 선했던 욥이 당했던 사건은 억울하기 그지 없다. 악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그에게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는 저주를 퍼부으며 배신했고, 가까운 친구들마저 위로한답시고 와서는 빈정대며 악에게 굴복하라는 권유 외에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욥도 사람인지라 그들의 말에 항거하기도 했고, 비난을 쏟아보기도 했지만, 그의 참담한 환경은 결코 나아지거나 끝나지 않았다. 

악의 세력에 지치고 절망했던 그는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했던가”(욥 3:11)라며, 자신의 삶을 저주하기까지 했다. 의롭게 살았던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원통함”(욥 10:1)과 억울한 내용을 하소연하기도 했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욥 10:3)라며 항의하기까지 했다. 갈수록 악의 세력이 승승장구함에 욥은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라며,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욥 12:4-6)이라며 탄식을 멈추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은 망하고 ‘선’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서는 안타깝게도 악의 시간이 오래 가고 또 우세함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때로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레 24:20) 보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됨도 숨길 수 없다. 상대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것은 물론, 손과 발이 마비되는 듯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총이나 검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처리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답답하게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라고 당부한다. 심지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롬 12:20)라는 것이다. 아직 혈기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말인가?  실천도 쉽지 않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인 성경은 원수를 갚는 이가 따로 있다고 말씀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악을 악어에 비유한 욥기 41장은 성도들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라는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악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암시하고 있다. “칼로 칠지라도 쓸데 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그것(악)이 철을 초개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26-27). 인간 스스로의 힘도 못 미치거니와, 제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악을 공격하더라도 승산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주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위해 대신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결국 항오(行伍)를 벌이고 있는 사악한 악의 권세를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겨낼 수 없으므로 그분의 “노하심에 맡김”이 최선의 승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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