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이 있어서 길을 가는데 갑자기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한 상점의 처마 밑에서 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그치는가 하더니만 또 다시 장대비가 내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아, 비야, 제발 좀 그쳐라, 그렇게 외치길 반복한다. 지금 그냥 비를 맞고 갈까, 아니야, 그칠 거야, 조금 더 기다리자, 이렇게 속으로 반복하면서 기다렸다. 다행히도, 30분여를 지나서 그 장대비는 그쳤다.

사람은 누구나 기다림 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그 기다림, 엄밀히 말하면 간절한 소망이 담긴 그 기다림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그 기다리는 것이 100% 다 현실화되고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하고 바라고 외치는 것마다 이루어지고, 손에 쥐게 되고, 소유하게 된다면 참으로 신바람나는 삶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기다림이 100% 반드시 완전히 절대적으로 완성되고 현실이 되는 기다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유업, 하늘의 상급에 대한 약속들이다. 이는 전능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므로 기다림에 낙심이나 후회가 있을 수 없는 기다림이다.

반면에 사람의 약속, 세상의 약속에 대한 기다림은, 환경과 상황과 사람과 이익에 따라서 수없이 변화되므로, 결코 완전히 이루어 질 수 없고, 막연하거나 불완전한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관심도 두지 않는 불신자들은 이 땅의 막연한 소망과 기대를 반드시 현실화하고자 하는 그 기다림에 목을 걸고 있으니 그 삶이 얼마나 애절하고 슬픈가?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이 주실 하늘의 집과 영원한 유산과 하늘 장학금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가진 것이 없어도 고단하지 않고 가난으로 불편을 겪어도 절망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5-37).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롬 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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