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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전환기를 맞으며"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체험한 사람만 아는 기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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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1  0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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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나의 목회(2)

1990년 12월 2일, 한국을 방문해 선을 보고 매일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녀가 딱 한 가지 결혼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되지만 주일에 꼭 교회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생활력이 강해 보여 흔쾌히 승낙하고, 23일만인 성탄절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다음 해 4월, 아내가 미국에 왔습니다. 큰 기대를 품고 온 아내는 상상했던 미국과 같지 않은 알래스카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해 많이 힘들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저희 가정에 새 생명을 잉태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업용 밴 한 대로 가정집 카펫 청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금씩 용기가 생겨, 알래스카 주 정부와 앵커리지 시의 빌딩 청소 입찰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잘난 줄 알았고 사업이 커질수록 눈에 뵈는 게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빌딩 한두 개는 직접 가서 일하면 되지만 사업이 확장되면서 직원은 물론, 사무실과 창고, 장비, 차량이 필요했습니다. 청소 자체가 보수 작업이어서 그와 연관된 페인팅, 목수일과 각종 수리도 했습니다.

앵커리지뿐 아니라 알래스카의 크고 작은 도시로 사업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러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이나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건물 열쇠를 잃어버렸다든지,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한다는 내용이었고,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는 건물 관리인의 불평이었습니다. 스트레스는 계속 쌓였고, 위기를 모면하는 거짓말만 늘었습니다.

한 번은 청소 입찰을 놓고 얄팍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앵커리지 시내의 원주민 병원 건축의 최종 청소 입찰이었는데,“하나님, 이 청소 계약을 허락해 주시면 감사헌금을 얼마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시간당 인건비가 두 배여서 짧은 시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고, 결국 그 계약을 따 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더니, 유난히 까다로운 감사와 임금에 대한 조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커다란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제서야 하나님께 서원기도한 것이 기억나서 감사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사업은 날로 번창해 종업원 수가 풀타임과 파트타임 합하여 6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즈음 출석하던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오셔서 제게 열심히 하라는 권면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내와 상의해 같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순복음 교회로 가면 열심히 하겠다는 약조와 함께 교회를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교회는 이전 교회보다 열악하고 미국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였지만, 목사님의 섬김과 기도가 제 마음을 열었습니다. 목사님과 신앙에 관한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기도할 줄 몰라요. 그저 감사기도만 합니다.”라고 고백하면, 목사님은 “괜찮아요. 감사기도가 가장 큰 기도예요”라고 말씀하셨고, “아직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요.”라고 말하면, “괜찮아요. 때가 되면 성령님께서 다 끊게 해주실 거예요”라며,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주일에만 교회 가던 제가 수요 예배와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금요 기도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던 중에,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전에는 제 기도 소리가 다른 신자에게 들릴까봐 소리내어 기도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눈물, 콧물 흘리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으며, 성령의 터치하심으로 방언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체험한 사람만 아는 기쁨이요, 눈물이요, 감사입니다.

그 후 금요 기도회는 제게, 마치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흘리면 개운해지는 느낌보다 더한 개운함을 느끼고 사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제 의지로는 끊을 수 없었던 술과 담배를 더 이상 찾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후로 새벽 예배에도 어린 아들을 깨워 함께 참석하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 앞장서서 봉사하면서 저희 가정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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