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한 호흡이므로 멈춰선 안돼"

 

로고스 채플 강단 (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어린 자녀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면, 아빠는 자녀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서른 넘고 마흔 넘은 성인 자녀는 계속 조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신앙이 어린 자녀가 원하는 것을 조르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수 있지만, 신앙이 자랄수록 이러한 기도는 줄어들게 되고, 조른다고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먹고 신앙의 연륜이 쌓여도 복과 재물, 건강과 안전을 기도 제목에서 빼지 않는다. 그래서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출판되자마자 미국에서 5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다. 이 책의 부제가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인데, 자신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알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면, 미래가 기도에 따라 바뀐다는 원리이다. 이런 기도를 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사업가들이 성공하고, 노처녀들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입소문이 퍼져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저희가 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는 빌립보서 2:21 말씀처럼, 자신을 위한 기도에만 몰두하면 하나님의 일을 자칫 잃어 버릴 수 있다. 

신앙이 자라야 중보기도에 대해 알게 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 2:5)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롬 8:3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들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중보기도의 핵심이다.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성경은“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라고 설명한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므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 응답을 받아도 자신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서 기도를 지속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b)라는 말씀처럼 구하지 않아서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위한 기도나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는 다른 종교나 무속신앙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방송을 통해 우연히 어느 권사의 아들이 무속인으로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무속인은 어렸을 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귀신을 보았고, 몸이 계속 아팠다고 한다. 신내림을 받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서, 고민끝에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되었고, 이후 몸도 건강해졌으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리고 어머니가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우리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 자기가 믿는 신이 기도에 더 잘 응답하는 것 같아서 더욱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선지자 850명과 진짜 신이 누구인지 가리기 위해 제단을 쌓고 대결한 일을 상기해 보자. 열왕기상 18:37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응답을 간절히 구한다. 엘리야의 간구에 여호와가 응답하셨다. 불을 내려 번제물, 나무를 모두 태웠을 뿐 아니라, 제단 주변의 도랑물을 말려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 되심을 알리실 때가 있다. 하나님은 미리 작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도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뜻을 세우시고 기도하게 하시기에, 이러한 기도는 이미 응답이 보증된 기도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드리는 합심기도를 강조하셨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땅에서 드리는 합심기도를 통해 하늘이 움직이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응답은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소망하며 현재를 사는 자들이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필요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사 62: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도록 하나님 앞에 잠잠치 아니할 기도자들이 필요하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기도를 생각해야 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은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잠깐 동안 좋은 것을 주시는 게 아니라, 가장 좋은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 하나님이 내 소유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라는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보듯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요 15:7) 것과 같은 의미로, 주님의 말씀이 살아서 내 마음과 삶 속에 역사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우리는 자신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도하게 된다. 유기성 목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기도’라는 설교를 통해 “기도를 많이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기도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내용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한 호흡이므로 멈춰선 안 된다(살전 5:17).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로서 대화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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