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오리건 주는 면적이 미국에서 아홉 번째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면적에 비하면 3/5 정도이지만, 인구는 캘리포니아 주의 1/10 수준이다. 오리건 주에는 산과 나무가 많다. 주요 산업도 임가공업이다. 나무는 크게 침엽수와 활엽수로 나뉜다. 

중학 시절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감동을 받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적이 있다. 김민기의 <상록수>라는 노래도 있다. 돌보는 사람 하나 없고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라는 노래는 젊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곤 했다. 우리는 늘 푸른 나무의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성품을 귀하게 여긴다. 

상록수는 대부분 침엽수들이다. 오리건 주에는 이런 침엽수들이 참 많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오리건 주로 올라오다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솟은 푸른 나무들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피톤치드가 폐 안으로 쏟아져들어와 수명이 연장되는 것 같다.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색이 녹색이라고 한다. 

대신 활엽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가을 단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로라할 만한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목수이셨던 예수님을 흉내내며 목공일(woodworking)을 하다보니 원목을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로 나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드우드는 단단하고 변형이 덜 일어나고 갈라지는 현상도 적어서 가구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반대로 소프트우드는 강도가 약하고, 온도나 습도의 영향을 더 잘 받는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해 건축 자재 등으로 많이 사용된다. 침엽수(Fir, Pine, cedar)는 소프트우드에 속하고, 활엽수(walnut, maple, oak, acacia)는 하드우드에 속한다. 

소프트우드의 장점이자 특징은 빨리 자란다는 데 있다. 겨울을 포함해 사계절 쉬지 않고 자라니 생산성이 좋은 셈이다. 그래서 가격도 싸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나무의 재질이 강하지 못하다. 키는 큰데 물러터졌다고 할까? 반대로 활엽수는 계절에 따라 성장과 멈춤을 반복한다. 목재로 사용할 정도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당연히 비싸지만,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답다. 그래서 주로 고급 목재로 사용된다. 

이런 상식을 이제야 알고 난 후 나무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졌다. 원목 작업을 하다보니 원자재의 품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때가 많다. 음식이든 음료이든, 원자재가 제일 좋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좋은 원목을 찾아 발품을 팔 때가 많고, 비싸더라도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빨리 자라고 늘 푸른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구나. 때로는 잎이 떨어지고 성장이 멈추고 시간이 걸려도, 그 과정을 인내하며 죽지 않고 살아난 나무가 정말 귀하게 쓰일 수 있구나.’ 낙엽 치우는 일 때문에 원망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절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에 대한 순응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속도에 집중하며, 대량화, 경제화, 효율화만 생각하며 앞으로 달려가던, 아니 위로만 자라던 세계가 전염병과 기상이변을 만나 멈칫하고 있고, 어떤 엔진은 작동을 멈춘 것 같다. 겨울과 같은 혹독한 시련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어떤 사람, 어떤 그룹은 눈보라를 헤치고 쑥쑥 자랄 것이다. 다 망하는 와중에도 돈 버는 사람이 있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힘도 없고 재원도 없고 권력도 없는 대다수의 평민, 시민, 국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고, 있는 것마저 하나 둘 내주게 될 것이다. 마치 나무가 나뭇잎을 분리시키듯. 한동안 죽은 듯이 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뿌리, 흙속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본질이자 원천인 뿌리가 살아 있다면, 시간이 지나 봄이 왔을 때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그런 과정을 얼마나 더 거쳐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고 멈추고, 피고 지고 또 피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더 단단해지고, 더 아름다워져서 목수의 손에 귀하게 쓰일 때가 올 것이다.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고 너무 초조해하지 말기 바란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다. 나라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 앞에서 멈추고, 엎드리고, 받아들이면서, 최소한의 호흡과 활동으로 지내보는 건 어떨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생명줄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 편집자 주 :  곽성환 목사는 매일 아침 큐티 방송 <일일Ten>을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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