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큰 환난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진정한 답은 없는 것 같지만,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변화할지 또한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 중에 엄마를 잃었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슬픔을 조금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97세이셨고, 돌아 가시기 전까지 정신이 깨끗하셔서, 딸과 엄마로 대화할 수 있었다. 가끔 농담으로 나와 형제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는 영특한 분이셨고, 돌아가시기 석 달 전 미장원에서 세 시간 넘는 긴 과정을 거쳐 이쁘게 파마하시고,  단정한 모습으로 커피 마시러 가자던 멋진 노인이셨다.  

그러나 마지막 임종을 함께 못한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양로원에서 아픈 몸을 추스리고자 하실 때 자식들이 못 오는 것을 이해하셨을까? 왜들 안 오나 하고 마음에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자식들이 와서 함께할 때 좋아하셨고, 힘이 되었다고 누누이 말씀으로 표현하신 분이어서 더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면 엄마는 우리들과 조금 더 함께 삶을 같이 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죽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 같은 생각으로 살고,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심어 주신 본능이지 않나 싶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은 어려운 상황인데,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동료들이 코로나19 감염으로 고생하지 않은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 감사했다. 일이 끝나면 언니와 함께 걸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서 더욱더 감사했으며, 코로나19 사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게 되지만, 내 자신은 너무나 큰 은혜를 받고 있으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중을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챙기고,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졸라대는 자로 있을 것인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지음받은 존재로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일까를 고민해 본다.

성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던 인물들을 생각해 본다. 특히 욥은 하나님이 의롭게 생각하시고, 대적자 마귀에게도 자랑하셨던 사람이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과연 어떻게 인정하실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심을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교회 편지로 알 수 있는데,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그리고  네가 부자라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나 벌거벗은 자요”, “너의 믿음이 차갑지도 덥지도 않음을 아시고, 토해 내치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나에게 큰 경고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잣대로 육신의 모든 것을 원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또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부터 시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면, 저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일까 하는 모습과 행동을 반성해야 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할 것이다. 기독의료상조회에서 일만 하고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원에게 내 몸같이 사랑은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내가 되고, 먼저 알고도 못하고 있는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또 진정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열심히 읽고, 기도해야겠다.

이러한 환난이 나의 삶 중에 왜 일어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지금 나의 행동과 생각과 마음을 더욱더 정하게 하여 미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 나는 알지 못하는 그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자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는 것,  말만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코로나19 사태라는 환난이 준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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