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열심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은 다르다.

나에게 공동체란 무엇이고, 또 공동의 분별이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성장해왔고, 소위 복음주의자들의 설교에 감탄하며 자랐지만, 공동체라든지 공동의 분별과 같은 말들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아미쉬들이 검은 단복 차림으로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내 세상과는 동떨어진 개념이었다.(옷차림뿐인가? 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과 신앙은 상관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방해라고 생각해, 중학교 2학년까지만 다니게 하고,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집의 전기도 자가발전을 한다.)

나는 교회에 열심이었을지 몰라도 공동체가 뭔지를 몰랐고, 개인적으로 실수하지 않고 살려고 기를 썼을지 몰라도 공동으로 의사결정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문제를 남과 상의해?’ 나는 파커처럼 공동체를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주위에서 공동체에 대해 말해 주는 자도 없었으며, 넘쳐나는 것은 오직 개인들이었고, 무수한 개인들의 의사 결정뿐이었다.

당시 나는 큰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고, 그 회사가 소위 한국에서 가장 합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했지만, 결국 최종 의사 결정은 주인(회장?)의 그날 아침 감정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안 이후, 열심히 조직의 사다리를 올라갈 이유가 없어졌다. 

‘공동’이라는 말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고리타분한 사회주의자의 푸념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살아오는 동안 보았던 사람들은, 육체적인 몸들은 샴쌍둥이들처럼 뭉쳐 있으되 진짜 삶들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웃이건, 학문의 길을 걷는 자이건, 교회에 열심인 자이건 아니건 간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기를 싫어했다(심지어 가족과도). 그들은 아무리 중요한 결정이라도 혼자서 끙끙대면서 했다. 그렇게 내린 결과들은 좋지 않았을 때가 좋았을 때보다 많았음을 직간접적으로 봐왔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이, ‘그럼에도, 이미 혼자 결정하고 혼자 당하고 혼자 그 결과를 다 뒤집어 쓴 쓰라린 경험이 있음에도, 그들은 왜 여전히 혼자 결정하고 혼자 그 몫을 감당하고 이전의 전철을 반복하며 사는가’였다.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분별에 관한 한 그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늘 이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바란다는 것. 행위는 동일하되 결과가 다르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미쳤다는 것’에 대한 정의와 다르지 않다. '같은 짓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

아무튼 지난 수십 년간 내가 주위에서 봐온 사람들은 죽어라 남과 상의하지 않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뭐라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이것은 멘토링의 지혜이다. ‘묻기 전에는 답하지 말 것’) 그래, 결혼했다고 치자. 그래서 의사결정의 원 안에 한 사람이 더 늘었다고 치자. 물론 이것도 부부 관계가 어떤가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일 거다.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1+1=2가 되어야 하는데 잘못하면, 도리어 빼기가 되어 0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도 어떤 수준의 부부이냐에 따라, 이 부부가 내리는 결정은 해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부부관계도 위기이지 않는가?

역시 나의 지난 삶을 통해 부부간의 의사결정들을 관찰해 온 결과, 의사결정을 잘하는 가정도 더러 있었지만 더욱 더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부부가 일심동체여야 한다는 것을, 좋든 나쁘든 한 방향으로 가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면서 그릇된 선택의 공범이 되었다. 남편 혹은 아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나무라고 조정/교정하는 게 부부의 몫 아닌가? (교회도 마찬가지. 교정의 기능이 없으면 그것은 사교 클럽일 거다) 

그런데 내가 봐 온 부부들은,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살거나(이건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너무나 죽이 잘 맞아서 판단을 뒤로하고 무조건 다른 한쪽의 의견에 동조하는 형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이런 자들은, 개인이건 부부이건간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자들이었을까? 아니다. 내가 만나온 그들은 건전했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살기를 원했다. 신앙적 표현으로, ‘독실한’ 이라는 형용사가 늘 따라붙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사업이 망했을 때, 교회에서 목사의 권위에 휘둘려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잃었을 때, 아내와의 관계가 엉클어졌을 때, 자녀가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 새로운 투자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할 때, 이들 소위 그 ‘독실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혼자 혹은 기껏해야 둘이서 결정했다. 지독하게 고독해하면서 결정하고선 곧 후회를 곱씹었다. 

그들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진지하게 물어보고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동일하게 ‘독실한’ 크리스천들에게 일언반구 물어보지 않았다. 뭐가 그리 창피했을까? 뭐가 그리 자신 있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왜 이들의 삶에는 남도 없고, 따라서 공동체도 없어야 했을까? 옆에 있는 남에게도 말 못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늘의’ 보이지 않는 신과 상의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신묘막측한 하나님과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오!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분별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에 다니지만 지독히도 공동체와 상관없이 사는 자들을 위한, 그리고 지독히도 자신들의 문제를 다른 이들과 상의하지 않고 사는 외로운 자들을 위한 헌정. 우리 조카들이 이런 말만 하면, “삼촌은 젊었을 때 안 그랬어요?”라고 따지듯이,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내 마음대로 결정하며 살아온 나의 ‘대책 없었던’ 젊음을 반성하기 위함. 그리고 분별은 나 혼자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필요하고, 또한 우리 모두 함께 해 나가는 공동의 과정일 때 그 열매가 더 풍성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

이런 공동체의 필요성과 공동체적인 분별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에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가 있었다. 대중가수 민혜경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불러 히트를 쳤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그 교회가 알려 주었다. 공동체와 메노나이트 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고, 내가 메노나이트가 된 것은  공동체 추구의 정신이 단지 좋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피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난 세월 한국 교회에서 이런 훌륭한 가치를 못 배운 나의 과거에 대한 보속의 의미라는 게 더 정직할 것 같다.

목사가 단상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방에서 봉사도 하는 교회, 목사 청빙과 직임과 신임의 모든 과정과 결정이 회중에게 있는 교회, 목사의 설교에 목매지 않고 교회의 기능에 더 신경 쓰는 교회, 교단을 중심으로 단합하지만, 개교회의 결정이 더 중요한 교회, 모든 결정을 몇몇 리더들만 하는 게 아니라 회중이 다같이 하는 교회, 회중을 위한 회중에 의한 회중의 교회! 소위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쉬는 평등한, ‘믿는 자들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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