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벨트는 텍사스 주에서부터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 이르기까지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주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지역을 칭할 때, 이 말을 사용합니다.

바이블 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타일러와 아만다라는 남자 고등학생과 여자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싹 틔우고 키워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좋은 직장, 좋은 집, 고급 차, 무엇보다 사랑스런 두 아이가 생겼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미국인의 꿈을 이루며 사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일러의 친구인 존이 이들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존이 머무는 동안 타일러의 아내인 아만다는 존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아만다는 자신의 불장난을 타일러에게 이렇게 제안하는 것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여보, 당신도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나와 존처럼 관계를 만들어 보는 게 어때?” 타일러는 동의했고, 평소에 운동을 하며 눈여겨 봐 둔 여성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아만다와 타일러는 서로 부부이면서, 서로 다른 이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삶을 즐기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중 성생활의 선구자(The Frontier of Polyamory)” (「CT Pastor Special Issue」“Polyamory: The Next Sexual Frontier” pp.35-38).

 “Polyamory”는 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Poly”는 그리스어의 “많은”에서 나온 말이고, “Amor”는 라틴어의 “사랑”에서 나온 말입니다. 두 단어를 합쳐서 “Polyamory”(다중성생활)로 사용하는데, 직역하면 “많은 사랑, 여러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좀더 바꾸어 표현하면,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만다와 타일러가 진정한 선구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만다와 타일러의 두 자녀는 그런 자기 부모를 선구자라고 생각할까요? 불륜을 저지르는 성적 타락자라고 생각할까요?

아만다와 타일러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을 도덕적 표준으로 갖고 있느냐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적 도덕관이 마음에 있으면, 아만다와 타일러는 성적 타락자들이고 불륜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도덕관과 무관한 입장에 있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든지, 아만다와 타일러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을 선구자 또는 개척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굳이 “선구자 또는 개척자”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면, 사실 아만다와 타일러보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에, 그들과 똑같은 성생활의 개척자와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개척자” 또는 “선구자”라고 절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증한 악을 행하는 자”(레 18:29), “음행자”(호 3:3), “침소를 더럽히는 자”(히 13:4),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고전 6:9)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경적 가치관이 상실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진정한 가치”라고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가 올 줄 알고 우리에게 이미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1-7).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붙들어야 할 도덕적 절대가치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모든 것이 다 바뀐다 하더라도, 그 절대가치의 기준을 놓지 않을 확고한 결단이 있습니까? 그런 결단 속에 사는 사람이 진정한 선구자의 삶을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