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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엇갈린 반응"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하나님의 선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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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6  06: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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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메릴랜드 주 베데스타에 위치한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했다. 의료팀은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면서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증시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심각한 결점 또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코로나19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을 때, 소셜 미디어의 일부 반응은 너무 끔찍하고 모욕적이어서 여기에 옮기지 못하겠다.

반대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우리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빠른 쾌유를 원한다. 우리는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건강하고 안전하길 기도할 것이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바이든의 러닝 메이트인 카말라 해리스 부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대통령 편이 아닌 MSNBC의 앵커 레이첼 매도우도 “하나님께서 대통령 부부를 축복해 주시길 기원한다. 기도할 때 감염된 모두의 빠르고 완전한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길 바란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평소에 트럼프를 비판해온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를 벌받아 마땅한 원수 취급을 하고 있다.

조나단 색스 랍비는 『Morality: Restoring the Common Good in Divided Times』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과거의 많은 선거에서 후보들은 무례하고 야만적이고 소란스러운 언사를 구사했다. 이는 선거 정치의 경쟁적 특성의 일부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정치권의 반대자들이 아니라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대편이 덜 인간적이라는 느낌, 같은 도덕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는 느낌, 어쨌든 반대편의 감성은 이질적이고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랍비 색스는 분열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요인을 언급한다. 첫째, 1960년대 이후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 심화이다.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을 당시에는 외부적인 위협과 재정적인 위기라는 공동의 적을 놓고 우리는 뭉쳤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의 상대적 평화는 그러한 단결을 약하게 만들었다.

둘째, 인터넷의 '내로캐스팅(narrowcasting)' 효과이다. 이전에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균형과 사실에 입각한 보도 기준을 지키는 네트워크를 통해 뉴스를 접했다. 색스는 브로드캐스팅에서 내로캐스팅으로 바뀐 것을 한탄한다. 그는 내로캐스팅을 ”우리의 이해와 정치적 입장만 반영하도록 걸러낸 뉴스“라고 정의한다. 그러한 보도는 우리의 믿음이 입증되길 바라는 잠재적인 욕망인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연구들에 따르면 견해가 같은 사람들이 뭉치면 그 견해에 대해 좀더 극단적인 경향을 보인다.

셋째는 ‘탈억제 효과’이다. 새로운 매체는 누구에게나 마이크를 제공한다. 소통의 가장 좋은 수단은 대면이다. 가장 나쁜 소통 수단은 익명이 되고, 보이지 않고, 규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35억 명의 사람들이 날마다 후자의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다.

색스는 이렇게 말한다. ”배려나 억제 없이 말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정보 제공과 설득의 소통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원시적인 치료로서의 소통이라 할 수 있는데, 분노를 일으키고 증폭시킨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요일 4:8), 우리는 분열의 시대에 예절의 본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분열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개인주의는 예수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일치에 어긋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

확증 편향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권위에 순종하는 것에 어긋난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디모데후서 3:16).

소셜 미디어의 탈억제는 예수님의 은혜에 어긋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다른 죄인들을 용서할 수 있다.

(* 편집자 주: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0월 5일 킬럼 일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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