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나의 인생, 나의 목회 (3)

미국 교회를 빌려 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던 우리 교회는 예배 30분 전에 키보드와 음향 시설 등 예배에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들어가 설치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시간이 흘러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미국 교회가 한국 음식의 냄새와 교회 시설 사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여 셋방살이의 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재정이 열악해도 성전을 구입하기로 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며 방법을 찾던 중에, 150석의 미국 교회가 새로운 성전으로 이전하면서 처음 노크하는 교회에 건물을 팔겠다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성도들의 반대와 떠남이라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성전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수가 적다보니 한 사람이 서너 사람 몫을 감당해야 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성전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기쁨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한 번은 주일을 준비하려고 토요일 오후에 혼자 교회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간적인 생각이 들면서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왜 나 혼자 교회 청소를 다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감사와 순종으로 목사님의 사역에 동참했는데, 시험에 들자 목사님이 돈 많은 집사님만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는 “성전 구석구석의 더러운 것이 바로 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마음이다.”라는 깨달음을 주셔서 청소를 하다 말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귀한 성전 주시고 건강 주셔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는 부족한 죄인입니다. 이제 남들이 몰라 준다 해도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일하겠습니다.”라고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로는 ‘사업을 하여 돈이 많은 집사님은 물질로 쓰임 받고 젊은 나는 몸으로 쓰임 받는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성령님이 저와 함께하심을 믿고 찬양하며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교회 중심의 삶을 살다보니 사업은 부업이 되고, 주의 일이 본업이 되었습니다. 직장보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열심히 하지 않는 리더들의 시기와 질투라는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그때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에 사시는, 나의 신앙 멘토 작은 누님이 “호용아! 너의 담임 목사님이 너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에 이곳 알래스카에 보내졌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감사하니?”라고 권면했습니다. 저는 그 권면을 마음판에 새기며, 앞으로는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물질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일하기로 결단하고 더욱 더 열심을 내었는데, 그 모습이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눈에 좋게 보였는지, 주의 종의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늘상 평신도로 열심히 섬기겠다는 마음뿐이었지, 주의 종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계신 장모님과 작은 누님이 제가 주의 종이 되어 말씀을 전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집사님과 저희 부부는 40일 특별 새벽 예배를  두 차례나 드렸고, 100일 작정 특별 새벽 예배를 드렸지만, 저는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자, 담임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40일 특별 새벽 예배를 한 번 더 드리자고 제안하셨습니다.

40일 예배 둘째 날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는 디모데후서 4:1-8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0일 특별 새벽 예배가 끝난 뒤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은 주의 환상을 보았다면서, 성도들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이제 윤 집사님이 주의 종의 길을 가기로 했으니 함께 기도해 주세요.” 담임 목사님의 선포와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저의 신학대 입학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이를 위해 사업과 가정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얼마 후, 담임 목사님께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골수암 판정을 받았고,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몇 명 안 되는 성도들 간에 저를 두고 교회가 힘든데 꼭 신학대에 가야 하느냐, 그냥 평신도로 섬겨도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과 그래도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일단 담임 목사님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면서 신학대에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목사님은 항암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강해 설교, 제목 설교, 본문 설교는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면서 설교에 대해 많은 걸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힘들어 설교를 할 수 없으면, 새벽 예배나 금요 기도회 때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투병 생활 2년 동안 목사님 대신 주보에 칼럼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병은 숨기지 말고 알려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미주 월간지 「광야」에 목사님의 투병 소식을 알리고 중보기도 SOS를 요청하면서 ‘이번만은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히스기야의 기도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때도 생명으로 역사하신 주님
히스기야의 간구를 들으시고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사
그 수한을 십오 년 더하시고
징조로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로
십 도를 물러나게 하신 주님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게 하신 주님
죽은 나사로로 통분하실 때
이제라도 무엇이든 하실 줄 믿는다는
마르다의 고백에
아버지께 들으신 것에 감사드리며
마리아와 마르다는 물론
우리로 믿게 하시고
나흘만에 풀어놓아 다니게 하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병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저희의 비웃음 속에서도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달리다굼의 역사를 이루신 주님

지금도 살아서 치료하시는 주님
피터 권 목사님의 육신의 연약함이 강건하기를
회개하는 주의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사
뜻을 돌이켜 믿음을 더하시며
남은 사명 밝히 보이사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이번만은 지나가게 하옵소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역사하시는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대로 되리라”하신 말씀을 믿고 구하오니
이번만은 그냥 지나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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