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형시이다. 형식이 정해진 시를 뜻한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모두 잘 외우는 것이 있다. 3434 3434 3543, 시조의 글자 수이다. 그리고 시조 몇 수는 금방 외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정몽주 선생이 남긴 명작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에 내어....” 유명 기생 황진이 시조도 있고,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독야청청하리라”도 있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후엔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나 하리라.”

400여 년 전 장만(張晩)이란 사람이 지은 다소 파격적인 시조이다. 관리로 출세도 했지만, 당파싸움에서 고통을 많이 당했다. 문인으로서 배도 타보고 무인으로서 말도 타 보았고, 다 때려치우고 농사도 지어 보았다. 하지만 어디 쉬운 직업이 없었다는 탄식이다. 직업인의 길은 험악하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상업고교 출신들은 취직이 잘 되었다. 주산 실력 까닭이었다. 전국주산대회 몇 등 안에 들면 유명 은행과 회사의 평생 직원이 된다. 한데 컴퓨터가 생기면서 주산 실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었다. 이제는 컴퓨터 수준이 아니다. 인조인간(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사람의 일을 도맡아 하는 시대가 되었다. 허드렛일과 기술직만도 아니다. 아예 인간이 못해내는 일까지 도맡아 해낸다. 의술 중에 가장 어렵다는 심장수술이나 뇌수술도 맡았단다. 인간의 고급전문기술직을 무섭게 탈취해 가고 있다. 게다가 신조 의사보다 인조 의사는 유지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목회자들이 모이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장 힘든 것이 설교라고. 하지만 가장 보람 있는 사역도 설교이다. 그런데 ‘인조목사’가 설교를 끗발나게 잘해 주는 시대가 이미 왔다. 목회직을 탈취당할 위협을 느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조 목사와 사람이 만들어낸 인조 목사의 설교 대결에서 신조 목사가 참패하는 것은 아닐까. 

벌써 손전화를 열면 ‘조인’(造人)의 연설을 적지 않게 듣는다. 당뇨를 낮추려면 우선적으로 먹어야 할 음식을 말해 주는 프로그램은 ‘생인’(生人)의 음성이 아닌 조인(AI)의 음성이다. 한국말 발음을 보면 금방 파악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제 인간은 별로 할 일 없게 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인간 멸종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아야 한다(살후 3:10-12). 굶어죽으란 뜻 아닌가. 그럴 바에야 죽기살기로 일감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감 말이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현재진행형으로 말씀해 주신 예수님께서 그 시범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다(요 5:17). 참된 행복은 핀둥핀둥 노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피땀 흘려 일하는 데 있다는 선언이다.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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