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나의 인생, 나의 목회 (4)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듯이(계 3:7), 신학교 입학이 담임 목사님의 투병으로 잠시 늦어지는 듯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여시니 한국에 있는 순복음영산신학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신학교 입학 전에는 물질적 여유가 있어서 생활비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아내 혼자 아들 둘과 작은 형이 이혼하며 우리집에 맡긴 조카딸 둘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원래 아내가 PTL(Praise the Lord) Alterations 가게를 계속 운영하면서,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해 생활비를 반으로 줄여 4명의 아이들을 교육하려고 했지만, 새 학기가 임박해 집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채 한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내는 혼자서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으며, 일하면서 4명의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내가 한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떠나고 나니,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의 마음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안양에 있는 처갓집에서 지내며,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서 2박 3일간의 수련회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사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순복음 영성에 갈급했고 신학 동기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장래 목회 사역의 중보자와 동역자를 구하고 싶어서였다. 

수련회 시간 중에 학과별로 편입생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있어 알래스카에서 왔다고 했더니, 다들 신기하게 생각했다. 나 또한 처음 기도원에 와서 신학생들의 충만한 모습을 보며 한국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생 몇 명이 함께 기도굴에 가자고 했다. 기도굴에 들어가기 전에 “3시간 후에 봐요”라고 말하는데, 제대로 된 기도원 하나 없는 알래스카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내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동기들이 옆에서 이끌어 주며 함께 훈련을 하다 보니, 기도굴에서의 3시간 기도가 얼마나 큰 은혜를 예비하는 시간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가족을 알래스카에 두고 온 나는 금쪽 같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미리 정보를 구해서 아버지 학교, 성막 세미나, 영성 세미나, 영풍 부흥사 교육 및 각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고, 성장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새신자 환영회에도 참석했다. 시간을 쪼개어 주일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9시 2부 예배를 드리고, 곧 바로 북미 캐나다 선교회 중보기도 모임에 참석해 함께 기도하며 사역을 준비했다. 

어느날 안양 처갓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예배하고 돌아오던 중에 작은 건물 2층에 순복음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수요일에 가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당시 개척교회들이 부흥에 대한 열망이 넘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교회 부흥(성장) 세미나를 찾아다니던 때였기에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금요일에 그 교회에 다시 가서 예배를 드린 다음, 미국 알래스카에서 온 신학생이라고 소개하자 그 교회를 개척했다는 여전도사님은 영어를 잘하는 전도사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다며 반가워하셨다. 그래서 주일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가야 하므로 주중에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한 달쯤 뒤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나 뵈었더니, 설교를 부탁하시는 거였다. 신학생에게 설교할 수 있는 기회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주일 오전, 오후, 저녁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 그리고 새벽예배까지 10번이나 설교를 해달라는 거였다. 가슴이 벅차올라 아내와 함께 기도한 뒤 새벽 예배를 제외한 모든 설교를 하기로 했다.

두렵고 떨렸지만 주석과 평소 인터넷에서 듣고 메모해 두었던 요약 설교를 참고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 역사한다는 확신으로 담대히 복음을 선포했다. 당시 신학생 교육 전도사의 사례비는 50만 원 정도였는데, 여전도사님은 첫 사례비 60만원에 도서비 30만 원과 식사비 30만 원을 보태 120만 원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어차피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께서 나의 사역 가운데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게 채워 주실' 줄 믿고, 첫 사례비부터 10의 2조와 감사, 선교, 건축 헌금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는 나의 초심을 보시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교육 전도사의 목회 중에 한 자매님의 육신의 질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은혜 또한 체험케 해주셨다.

그 자매님은 진찰 결과 자궁에서 혹이 4개나 발견되어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검사하기로 했다며, 금요예배때 기도를 요청했다. “기도하면 야훼 라파! 치료의 주님이 역사할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간절히 기도합시다.”라고 선포하고 안수기도를 했는데, 그 자매님이 월요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3개의 혹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그 소식에 놀라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어서 나머지 1개도 없애 달라고 더욱 간절히 기도했는데, 남은 1개마저 완전히 치료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그때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아무 능력 없는 작은 자도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을 구입해서 읽을 수 있는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불덩이로 들어갔다가 졸업할 때는 숯덩이가 되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신학서적만 읽으면 머리에는 지식이 쌓이지만 가슴은 식어 버리고, 반대로 경건서적만 읽으면 가슴은 쉽게 뜨거워지지만 열정은 식어버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되기 쉽기에 책을 읽는 데도 균형이 필요했다.

늦깎이 신학생이 갈 길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신학자나 다른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오지의 선교사가 아니라, 맡겨진 양무리들을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으로 양육하는 목회자였기에, 개척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준비하는 동안 파수꾼 같은 동기 동역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역의 동역자들을 붙여 주셔서 감사했다.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갔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담임 전도사님께서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하지 않겠느냐며 개척 자금을 주시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졸업 후의 진로와 개척 문제를 놓고 양평 금식 기도원에서 난생 처음  21일 장기 금식 기도를 했으며, 사역을 준비하는 내게 하나님께서 금식을 통해 예비하신 또 다른 은혜를 체험케 하셨다. 동기생들이 함께 금식 기도를 했으며, 금식 3일째 되는 날, 7일째 되는 날 그리고 14일째 되는 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함께하는 동기들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다. 

21일 금식을 마칠 때쯤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음성은 “잠잠하라!”였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리라”(시 46:10)라는 응답을 받았다. 이미 대학원 등록을 한 상태였지만, 바로 짐을 정리하고 알래스카로 돌아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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