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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분별 3메노나이트 교회의 공동체적 분별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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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4  04: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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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바 던(사진 출처- 마르바 던 홈페이지)

메노나이트 교회의 신앙고백서 제16조 <교회의 질서와 일치>장에 밝혀져 있듯이, 교회의 어떤 문제도 소위 특정한 일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교인들(회중)이 교회 지도자를 선택하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항상 성경을 지침으로 삼고.(이 부분이 퀘이커의 명료화 위원회식의 분별 방법과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퀘이커들은 전적으로 성령중심적인 분별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대한 강조가 없거나 덜하다) 상대방의 의견을 기도하는 열린 심령으로 듣고 또 말해야 한다.” 또한 “교인들은 칭찬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교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공동체는 분별하는 과정에서 성급해서는 안 되며 의견일치를 위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라고 밝힌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이처럼 전체 성도들과 함께 결정하는 것이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하여, 이 가치의 보존을 위해 지난 500년 동안 죽기까지 수고를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 규모에 민감해 보통 200명 이상의 교인들이 모이면 분리를 고민한다. 공동체적인 교회를 추구한다면서, 단상에 있는 담임목사의 집 밥상에 숟가락이 몇 개인 줄도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교회 회중이 서로를 알 수 있는 교회. 그래서 서로의 사정에 대해 묻고 돕고 교정할 수 있는 교회.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 크기는 제한 받아야 하고, 이럴 때만이 허울만 가족 같은 교회가 아니라 진정한 나눔의 공동체 교회가 될 수 있다.

나는 지난 16년간 메노나이트 교회와 전통을 통해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배웠고, 나와 가족의 문제를 교회와 상의할 수 있었고, 교회를 통해 고백할 수 있었으며, 교회와 함께 나의 소명을 분별해 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삶의 변화를 꼽으라면, 나의 호흡이 느려진 것이고, 나의 삶이 단순해진 것이다. 공동체로서 ‘함께 다같이 나아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내 몸이 완전히 발가벗겨졌을 때, 그래서 더 이상 ‘나’ 라는 자아가 나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기를 포기했을 때, 나를 내려놓고 공동체와 함께 걷기가 가능했다. 드디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았다.

다시 신학교 졸업 후 나의 진로와 관련해서 마무리하자면, 이제는 퀘이커 공동체의 명료화 위원회도 알았고, 교회가 내 삶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고, 따라서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더욱 커졌다. 영향력 있는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내 진로 문제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해외 선교 창구인 ‘위트니스(Witness)’에 원서를 내고,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선교 정책은, 보내는 게 아니라 현지의 요청에 응답하는 형식이다. 선교지에 가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 요청하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지에서의 모든 의사 결정과 행동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철저히 현지인과 현지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떠날 사람들이고, 그들은 남기 때문이다. 부부 각자가 평가를 받아야 하고, 부부 각자가 쓰임을 받는 곳에 파견된다. 누가 누구를 따라간다는 것은 없다.

우리에게 소개된 지역은 중국 하얼빈이었다. 2015년 2월, 파견 전 마지막 조율을 위해 교단의 지도자들과 함께 중국 현지를 방문했다. 우리들의 일치와 성령의 확신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좋았다. 우리를 받을 자들도, 가는 우리들도 서로를 원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우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떠나기 하루 전 내가 꾼 이상한 꿈이 우리의 앞날의 전초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달려든 두 마리의 뱀. 하나는 태워 죽였지만 살아남은 다른 한 마리의 뱀. 그리고 연이은 아내의 사고와 암의 발병. 결국 무위로 그친 우리들의 중국행.

다시 명료화 위원회가 필요해졌다. 우리의 긴박한 문제들을 함께 분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더욱 더 절실해졌다. 이제는 우리의 소명과 진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치유와 생명을 위해서였다. 신학교의 멘토들과 교계의 스승들과 교회의 몇몇 친구들을 모아 이메일 그룹을 만들었고, 치료 과정을 이들과 상의하고 분별했다. 이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이들과 나누었다. 지역과 시간차를 불문하고 우리의 이런 예상치 않은 여정에 동참한 이들의 공동체적 기도는 과연 놀라웠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나눔과 분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더 겸손해졌고, 더욱 더 위로와 자유를 얻었으며, 더욱 더 공동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선교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공동체적 분별에 대해서 감탄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루터교 신학자인 마르바 던 역시 “나에게 평등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가장 많이 체험하게 해주고 분별의 문화에 가장 숙련되었다는 느낌을 준 교파는 메노나이트 교회였다.”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노트르담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 옛날 자신의 영적 조상 마르틴 루터에 의해 핍박을 받았던 메노나이트 교회를 알게 되었다. 루터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그녀는 우선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멤버쉽(세례 교인들에게만 주어지고 교회의 모든 의사 결정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됨)을 받는 절차에서 메노나이트의 공동체적 분별을 경험한다. 또한 그녀는 장애자로서 많은 장애를 경험하면서 학업을 지속할지 말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 메노나이트적인 ‘영 분별’의 과정을 경험한다.

퀘이커의 명료화 위원회와 같이 마르바 던의 문제를 명료하게 하기 위한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소집됐고, 질문들이 이어졌다. 마르바 던의 자아를 깨우치게 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이 꿈꾸는 삶을 그림으로 그리면 무엇입니까?” “다리입니다.” “어떤 다리인가요?” 마르바 던은 여러 교파와 일반인과 학자와 다양한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질문자는 이에 대해, “다리는 강 양쪽을 다 딛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르바 던이 이해를 못하자 그 질문자는, “당신은 교회 사역과 수련회 등으로 일반인 쪽에 굳건하게 딛고 있습니다만 학자들 쪽에서는 무엇이 당신을 붙들어 주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런 분별의 과정으로 마르바 던은 학위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했고, 노트르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장애신학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가 배운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분별의 두 가지 요소는, 첫째 “성령께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이 말을 주신다고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에만 말하는 것이고, 둘째 개인적인 문제일 경우에는 “성령께서 개인의 유익을 위해 이 말을 주신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루터교 신학자로서, 장애 신학의 리더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메노나이트의 공동체적 환대와 분별을 열렬히 지지하는 팬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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