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영성은 바로 “웃음의 영성”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영성 형성의 모델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입니다. 앞으로 다섯 번에 걸쳐서 이삭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삭의 영성”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이삭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묵상합니다.

삶은 은혜이다 

이삭의 태어남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고, 어머니 사라의 나이는 90세였습니다. 어떻게 100세와 90세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삭의 태어남 자체가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이삭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은 은혜이다”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생명이 주어진 것도 은혜이고, 생명이 유지되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 속에서 유지되고 지탱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시작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호흡을 주셔서 새로운 날을 시작하게 하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은 은혜이다”라는 신앙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이삭의 태어남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 두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나옵니다. 신실하심(faithfulness)이란 한결같고, 변함 없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한결같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변함 없이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창세기 21:1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서 두 번이나 반복되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사라는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기쁨의 웃음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허탈한 웃음입니다. 90세의 노인인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인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구약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것을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라고 부릅니다. 90세의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사라는 이것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은혜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비록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불성실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만약 사라의 신실함이 이삭을 얻는 조건이었다면, 사라는 이삭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딤후 2:13).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시험에 드는 존재이지만,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은혜의 힘입니다. 비록 나는 불성실하여도 나를 향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내 삶에 은혜가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웃게 하신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웃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1:6에서 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 말씀은 묵상할수록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90세 노인인 사라가 아들 이삭을 품에 안고서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만드셨습니다.” 

아들이 없어서 사라가 겪었던 모든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순간입니다. 사라가 겪었던 깊은 절망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는 순간입니다. 사라가 처음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웃었던 허탈한 웃음, 불안한 웃음, 약속을 차마 믿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완전한 기쁨과 감사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눈물, 한숨, 절망, 불안을 기쁨의 함박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웃음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뭐,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요.”라고 말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웃었던 적이 언제입니까? 기쁨이 가득차서 함박웃음을 짓거나, 호탕하게 웃었던 적이 도대체 언제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걱정과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삶의 무게가 온통 우리를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삭이 우리에게 귀중한 말씀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웃을 일이 없는 우리를 웃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고,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고, 신뢰하지 못하는 나의 불안한 웃음을 감사의 함박웃음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삶의 상황에 놓일지라도, 아무리 삶의 무게가 양 어깨를 짓누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삶에 웃음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영성은 바로 “웃음의 영성”으로 시작합니다. 

송명희 시인의 <성령으로 바꾸신다>라는 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웃는 게 다 기쁨이 아니며, 우는 게 다 슬픔이 아니다. 좋은 게 다 좋음이 아니며, 사는 게 다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은 슬픔으로도 기쁨으로 만드시며, 하나님은 죽음으로도 생명으로 바꾸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함께하시면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며, 죽음이 생명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웃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이삭의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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