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예배당에 첫발을 디딘 날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요일 저녁이었는데 그날의 체험을 평생토록 생생하게 지니고 산다. 66년 전 일인데도 말이다. 특히 그날 불렀던 찬송가가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로 시작되었다. 후렴은 ‘속죄함, 속죄함...’이었다. 속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 불렀다. 책방에 가서 성경과 찬송가를 샀다.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쓰기로 했다. 그것도 성경은 신약만, 찬송가는 악보 없는 무곡이었다. 어떻든 그래서 찬송가 가사를 열심히 외웠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났다. 박재훈 박사님이 개인 찬송가집 『창조주 하나님』을 출판했다. 찬송가 도합 513곡을 수록했고 모두 그분의 작곡이었다. 한국 찬송가 역사에 획기적이고 보배로운 자산이요, 찬양의 풍요한 열매였다.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만 이루어진다면 세계 교회에 큰 기여가 될 만하다. 무엇보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다. 그 찬송가집에는 필자의 작사 13곡이 들어 있다. 그 중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 드리네’는  5년 전 토론토에서 열린 헌정행사에서 연합찬양대가 불렀고, 마지막 절은 참석한 회중이 함께 참여했다. 그 지휘는 백경환 목사님께서 맡았다.

백 목사님과는 실비치 은퇴마을의 이웃이 되었다. 이곳에서 백 목사님은 합창단 지휘를 계속하고 있고, 필자는 문예반 자문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작사하고 백 목사님이 작곡한 ‘코리안의 노래’는 남북한이 함께 부를 노래로서 순조롭게 보급되고 있다.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지난 해 7월에 마지막 작곡발표회를 가지시겠다면서 찬송가 가사를 필자에게 부탁해 지은 가사가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이었다. 성금요일 예배 행사에서 사용할 찬송가였다.

가사 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성경에 기록된 원문대로 쓰자니 한 절 노래여야만 했다. 그런데 너무 길었다. 또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가상칠언) 중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 성경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달랐다.   그래도 2절 찬송가로 정리했다. ‘주기도문 찬송가’가 성경에 있는 주기도문 원문을 다소 변형시킨 것에 용기를 얻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아버지 저 사람들 용서하셔요. 자신들이 하는 일 알지 못해요. 내가 네게 참으로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살게 된다. 여인이여 보세요. 아들이네요. 사랑으로 보살펴라 너의 어머니이시다.

2)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요. 내가 목마르다. 내가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드립니다.

[후렴]  골고다의 십자가 앞 떨고 있는 우리 무리. 날마다 저 십자가 평생토록 지고 가리.

하지만 예기치 못한 무서운 질병 재난 때문에 발표 행사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십자틀을 메고 태어난 수난곡이 되었기에 그 은혜가 더욱 깊고, 더욱 높고, 더욱 뜨겁지 않은가.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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