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사정으로 칼럼 쓰기를 잠시 쉬기 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열 배의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하나님께 드리면, 열 배 이상으로 복 주시더라는 내용이었다. 칼럼이 나간 뒤, 하나님께서 무척 섭섭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언제 열 배의 복만 주겠다고 했냐며 마치 책망이라도 하시듯이 더 큰 복을 부어 주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다들 어려워하는 중에도 새 집을 허락하시더니, 집 구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며, 대출 경비(loan fee)까지 이것저것 다 공급해 주셨다.  
거기다 회사에서는 이제껏 받아본 적 없는 액수의 보너스가 나왔다. 마치 이사 비용으로 쓰라는 듯이…. 신문에서는 직장을 잃거나, 수입이 줄어든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받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그 칼럼 이후 받은 복은 내가 하나님께 드린 것의 100배는 넘어 보인다. 누가 봐도 내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틀림없다. 마치 하나님께서 “넌 나를 왜 그리 쪼잔한 하나님으로 만들었느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핀잔하시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또 한 번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월간 QT책에 실린 어느 비영리단체의 광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매달 30불을 내면 한 아동의 한 달 먹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나와 우리 가정은 미국에서 끼니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다이어트를 할 정도로 풍족하게 먹고, 또 남아 버리는 음식이 적지 않은데, 하나님과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였다.  

하지만 한 달에 30불, 1년이면 360불이어서 적지 않은 금액이고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월급은 꼬박 통장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아내로부터 얼마간의 용돈을 타서 쓰는 내 입장으로서는 말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후원해서는 안 되지만, 부담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달 미루다 드디어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재택근무 덕분에 개스비나 점심값 나갈 일 없고, 사람 만날 일도 줄어 따로 돈 쓸 데도 없다는 계산도 섰다. 요즘같이 힘든 때 후원을 결정해 주어 너무 감사하다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후원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께서 시키시고, 감동 주시는 일은 믿음으로 결정하고 나면 잘했다는 확신이 들게 마련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후원금액을 충분히 채워 주시는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후배 녀석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광고에 한 번 출연하라는 것이다. O 은행이 고객에게 희망을 주는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데 급하게 가족 모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은행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다 훗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수락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기쁜 마음으로 촬영을 마쳤고, 후원금액의 몇 년치 액수를 출연료와 장소 사용료로 받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는 잠언 말씀(19:17)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참 정확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또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그 복을 지탱할 그릇인 ‘믿음’이 있는지 먼저 테스트하신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2021년이 시작됐다. 지난해 경제적으로 힘들고 우울했다면, 새해에는 헌금과 구제로 하나님께 ‘투자하고’ ‘꾸어 주는’ 것은 어떨까? 처음에는 아깝고 힘든 생각이 들더라도, 곧 하나님께서 100배의 축복으로 갚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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