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20년 전 일본이 ‘아사 즈케 기무치’를 김치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아사 즈케는 발효가 안 된 배추 겉절이에 식품첨가제를 넣어 만든 인스턴트 식품으로 여기에 고추를 넣어 매운 맛을 내게 한 거다. 이에 대해 한국이 이는 김치가 될 수 없다고 일축하자 일본에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김치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발효식품의 건강 효과가 서구인의 관심을 끌자 일본이 재빨리 움직인 거다. 그러면서 김치의 일본식 발음인 ‘기무치’가 유명해졌고 김치 종주국 논란이 일었던 거다. 그러나 이 논란은 이듬해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한국의 ‘김치’를 공인하고 김치의 국제 표준 규정을 제정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배추에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파, 젓갈 등 5가지 재료를 넣어 버무려 만드는 방식이 김치의 표준으로 등록된 거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중국식 절임 채소인 파오차이(泡菜)가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면서 종주국 논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중국 쓰촨성 메이산 시 주도로 민간단체인 국제표준화기구(ISO)를 통해 파오차이를 국제 표준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한국 김치는 파오차이의 아류로 중국이 김치 산업의 세계 표준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면서다.

그러자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와 파오차이는 별개’이고 ‘김치가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 (CODEX) 에서 국제 규격으로 공인된 한국 식품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를 일축했다. 영국 BBC방송도 이어 ‘김치와 파오차이는 다르다’며 한·중 문화 갈등 양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라고 부르는데 파오차이는 염장(鹽藏)을 한 채소를 말한다. 말하자면 피클에 가까워 우리 김치와는 제조공정과 발효단계 등에 차이가 있다. 중국 주장대로라면 서양의 피클도 김치고, 파오차이란 말이 되는 셈이다.

중국 환구시보도 파오차이에 대한 산업표준이 김치산업 국제표준으로 제정됐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오보였다. 자신들이 근거로 든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파오차이의 식품 규격이 김치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환구시보는 예전에도 사드배치에 찬성하는 한국인에게 ‘김치를 먹어서 멍청해졌나’고 망언도 한 바도 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6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민족인 조선족을 앞세워 고구려, 발해 등 동북 3성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자국 역사로 편입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아리랑, 태권도, 농악, 판소리 등도 자국 문화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중국이 주장하는 ISO 인가는 상품, 서비스 거래를 원활하게 하려는 민간기구의 기준일 뿐, 권위 있는 국제기구 CODEX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 표준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중화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밖에 볼 수 없다.

얼마 전 NYT는 한국인들이 집에서 번거롭게 김장을 하는 대신 농촌 곳곳의 김치축제나 체험 프로그램을 찾아 전통 맛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상을 두고 ‘김치 르네상스’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한국정부는 올해부터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정했다. 김치 재료 하나하나(11)가 스물두 가지(22)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머나먼 미국 땅에 십 년 넘어 살면서/아침저녁 비후스텍 맛 좋다고 자랑 해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는 원조 걸그룹 ‘김 시스터즈’의 ‘김치 깍두기’ 노래가 떠오른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